'요코 이야기'는 일제 패망 직전인 1945년 7월 함경북도 나남(청진시)에 살던 일본인 가족이 한국을 빠져나와 일본에 정착하기까지의 과정을 11세 소녀 요코의 눈으로 묘사한 영어 소설. 재미 일본인 작가 요코 가와시마 왓킨슨 씨의 자전적 작품이다.
이 작품은 1986년 'So far from the bamboo grove· 대나무 숲 저 멀리서)'란 제목으로 출간된 뒤 미국 내 상당수 중학교에서 영어교재로 채택돼 왔다. 한국에도 2005년 '요코 이야기'(문학동네)란 제목으로 번역 출간됐다.
그러나 한국인이 일본인을 상대로 강간 등 온갖 잔학한 행위를 한 것처럼 기술한 이 책의 내용에 지난해 평범한 미국의 한인 학부모들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뒤늦게 논쟁의 불씨가 피어올랐다.
▽한인 학생과 주부들의 분노= 지난해 봄 뉴욕 웨스트체스터의 주부 수잔나 박 씨는 초등학교 6학년 딸이 학교 수업교재라며 들고 온 이 책을 읽고 분노를 견딜 수 없었다.
일제 패망기라는 시기적 특수성과 주인공이 '일본인 소녀'라는 점을 감안해도 이 책은 마치 일본인이 한국인들에 의해 온갖 잔학한 행위를 당한 피해자인 것처럼 묘사했다.
11세 소녀 요코가 모친, 언니와 함께 나남에서 서울과 부산을 거쳐 일본으로 가는 과정에서 한국인들의 무자비한 추적을 간신히 피했고, 강간이 자행되는 것을 목격했다고 기술한 것.
박 씨를 비롯한 한인 학부모들은 학교 측에 교재 목록에서의 삭제를 요구했고 지난해 9월 학교 측도 이를 받아들였다. 비슷한 시기에 보스턴의 학인 학부모들도 일부 학교에서 도서목록에서 삭제하겠다는 결정을 이끌어냈다.
▽힘겨운 투쟁= 그러나 보스턴의 도버-셔본 중학교는 지난주 지역학교위원회를 열고 지난해 11월의 교재 삭제 결정을 번복키로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학교 측은 "삭제 결정은 검열에 해당할 수 있으며, 책을 읽은 학생들의 반응이 긍정적이었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에 한인 학부모들은 "영어교사와 타민족 학부모들의 반발로 번복 사태를 맞게 됐다"고 안타까워하면서 필요하다면 연방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태세다. 미국의 한인 언론들도 이 문제를 연일 보도하며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 책은 아프리카와 서울의 외국인 학교에서도 교재로 쓰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작된 실화 논란=이 책은 중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출판되지 않았다. 문학동네는 한국판을 출판하면서 "중국에선 강한 반일 감정 때문이며, 일본에선 요코의 어머니가 일본 정부의 전쟁 도발을 강한 어조로 비판하는 대목 때문에 출판을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이 책은 저자가 내용의 대부분이 실제 경험담이라고 밝혔으나 일제 패망기에 미군이 북한 지역을 폭격했다거나 대나무 북방한계선보다 북쪽에 위치한 청진에 대나무 숲이 있다고 묘사하는 등 당시의 사실과 명백히 위배되는 부분도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학동네 관계자는 "이 책은 역사책이 아니라 문학책이며 저자가 어렸을 때 기억에 의존해 쓴 것임을 감안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책에 기술된 장면과 역사적 사실이 엇갈리는 부분에는 검증이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워싱턴=이기홍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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