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초대석]후쿠이 다케오 日 혼다 사장

  • 입력 2007년 1월 20일 03시 01분


혼다자동차의 고속 주행 시대를 열어 온 후쿠이 다케오 사장이 18일 도쿄 아오야마에 있는 본사에서 혼다의 성공 비결을 설명하고 있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혼다자동차의 고속 주행 시대를 열어 온 후쿠이 다케오 사장이 18일 도쿄 아오야마에 있는 본사에서 혼다의 성공 비결을 설명하고 있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2004년 8월 일본 도치기 현에 있는 혼다의 자동차 주행시험장에서 최신형 포뮬러1 경주용 자동차(F1머신) 시험주행을 직접 마치고 나오는 후쿠이 다케오 사장. 그는 이 시험주행에서 최고 시속 292km를 달렸다. 사진 제공 혼다자동차
2004년 8월 일본 도치기 현에 있는 혼다의 자동차 주행시험장에서 최신형 포뮬러1 경주용 자동차(F1머신) 시험주행을 직접 마치고 나오는 후쿠이 다케오 사장. 그는 이 시험주행에서 최고 시속 292km를 달렸다. 사진 제공 혼다자동차
2004년 8월 일본 도치기(회木) 현에 있는 혼다의 자동차 주행시험장.

혼다의 최신형 ‘포뮬러1 경주용 자동차(F1머신)’가 맹렬한 스피드로 트랙을 돌았다. 속도측정기에 기록된 최고 속도는 시속 292km. 운전자는 경주용 오토바이로 갈아탄 뒤 트랙을 두 바퀴 더 돌았다.

운전자가 헬멧을 벗자 보도진 사이에서 ‘앗!’ 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성능의 극한을 달리는 이 첨단 경주용차를 운전한 사람은 바로 그해 환갑을 맞은 후쿠이 다케오(福井威夫) 사장이었기 때문이다.

후쿠이 사장이 취임한 후 혼다의 시가총액은 거의 2배로 늘어났다. 2006 회계연도 결산에서도 판매 실적 기록이 경신될 것으로 보인다.

혼다의 고속 주행을 이끌어 온 후쿠이 사장을 18일 오후 도쿄(東京) 아오야마(靑山)에 있는 혼다 본사에서 만났다.

―F1머신을 직접 몰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는데….

“젊은 시절부터 자동차와 모터스포츠를 좋아했다. 입사 후에도 연구개발과 경주에 깊이 간여해 왔다. F1머신을 타 보고 싶었고 탈 수 있는 환경이기에 운전대를 잡았다.”

―환경이 된다고는 하지만 다른 자동차회사의 최고경영자(CEO)가 F1머신을 운전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자칫하면 사고가 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쉽지는 않다. 하지만 CEO가 F1머신을 모는 것이 용인되는 자유로운 분위기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혼다의 기업문화다. 그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해 일부러 F1머신 운전대를 잡았다.

자동차 경주는 혼다의 경영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차지해 왔다. 기술 개발과 브랜드 가치 제고에도 도움이 되지만 무엇보다 인재 육성에 큰 역할을 한다. 혼다의 엔지니어를 F1이라는 거친 세계에 3, 4년간 완전히 빠뜨리면 이들은 좌절감을 맛볼 때도 많다. 잘 시간도 없는 가혹한 환경을 필사적으로 헤쳐 나온 경험을 갖고 혼다의 비즈니스에 복귀한 인재들은 자신감을 갖고 활약하게 된다.”

―2004년 한국 시장에 진출해 지난해 판매 대수가 4000대에 육박하는데 한국에서 직접 자동차를 만들어 판매할 생각은 없는가.

“판매 대수가 점점 늘어 일정 수준에 이르면 당연히 현지 생산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본다.”

―한국의 자동차 산업을 어떻게 생각하나.

“국제적으로도 급성장해 왔다고 생각한다. 모델에 따라서는 우리의 직접 경쟁자이기도 하므로 선의의 경쟁을 하고 싶다.”

―지금까지 시빅은 세계적으로 1700만 대 이상, 어코드는 1500만 대 이상 팔렸다고 들었다. 이렇게 대히트를 치게 된 비결은….

“어코드는 미국의 중고차 시장에서 모든 차종을 통틀어 ‘재판매 가치’가 가장 높은 모델로 꼽힌다. 단기 수익을 중시해 판매 대수를 늘리려고 하면 유인책을 제공하거나 렌터카 회사에 대량으로 판매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혼다는 이런 일을 일절 하지 않는다. 리베이트(할인)도 거의 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는 결국 중고차의 재판매 가치를 떨어뜨려 고객의 신뢰를 갉아먹기 때문이다. 이런 원칙을 오랫동안 고수한 결과 고객의 신뢰도가 높아졌다. 이런 전략은 최고의 효과를 낳았다.”

―환경 부문에서 혼다는 세계적인 강자로 등장했는데….

“자동차 배기가스의 대기오염이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은 약 30년 전이다. 이 문제에 가장 먼저 대응한 선구자가 우리다. 지금도 환경에 관한 한 항상 선두에 선다는 전략으로 경영에 임한다.”

―경영 환경이 어려울 때는 환경을 비롯한 기초 분야의 연구개발에 집중하기 힘들지 않은가.

“기술 발전 없이는 기업 발전도 없다는 것이 창업 이래 혼다의 신념이다. 눈앞의 이익과 수익에 집착해 미래를 위한 투자를 게을리 하는 판단을 하지 않았다. 그 결과로 혼다의 오늘이 있다고 본다.”

―다임러와 크라이슬러, 르노와 닛산이 합병했다. 바야흐로 세계 자동차 업계는 인수합병(M&A)과 제휴의 시대이다. 혼다가 다른 회사와 제휴를 하지 않고 홀로 서기를 고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과거에는 다른 회사와 제휴를 한 적이 있다. 앞으로 제휴를 하지 않는다고도 단언할 수 없다. 지금은 필요한 기술을 얼마든지 독자적으로 개발할 수 있어서 제휴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뿐이다.”

―‘기술의 혼다, 판매의 도요타’라는 이야기가 그래서 나온 것인가.

“우리는 기술에 강하게 집착하지만 기술이 가장 중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혼다의 최우선 가치는 고객과 인간이다. 기술 자체는 인간에게 유익할 수도 있고 인간을 불행하게 할 수도 있다.”

―독자 기술력이 높다고는 하지만 M&A와 제휴는 시대의 대세가 아닌가.

“혼다는 세간의 유행을 거스르는 회사다. ‘유행이니까 한다’는 일은 혼다에선 있을 수 없다.”

―현재 사이타마(埼玉) 현에 첨단 엔진 공장과 신차 공장을 짓는다고 들었다. 발표 당시 혼다가 일본 국내에 30년 만에 공장을 짓는다고 해서 큰 화제가 됐다. 한국에서도 ‘일본 제조업의 국내 U턴’이라고 해서 관심을 모았다. 인건비가 비싼 일본 국내에 공장을 짓는 이유는 무엇인가.

“당분간 일본 혼다의 생산기술이 세계 혼다를 이끌어 가는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다. 일본에 시장, 연구소, 공장이 있기 때문에 이 3자가 연계를 통해 상승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물론 일본 인건비가 높은 것은 사실이다.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이 인건비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인건비가 높아도 다른 부분에서 충분히 상쇄할 수 있다.”

사이타마 현은 도쿄에 바로 이웃한 현으로 이른바 수도권이다. 일본에서도 수도권의 집중을 방지하기 위해 공장 신축 및 증축을 제한하는지, 허가를 얻는 데 애로사항은 없었는지 물어봤다. 그러나 일본에서 기업 활동을 가로막는 비합리적인 규제를 상상하기조차 힘들기 때문인지 후쿠이 사장에게 질문의 뜻을 이해시키는 데 상당히 애를 먹었다. 그는 “사이타마 현에 공장을 지을 만한 땅은 얼마든지 있다”면서 “사이타마 현은 공장 건설을 아주 환영했다”고 말했다.

최근 엔화 약세로 자동차 업체들의 실적이 크게 개선되자 일본 자동차 업계 노조들은 임금 인상을 강하게 요구할 기세다. ‘일본의 기업들이 실적에 비해 임금 인상에 너무 소극적’이라는 일본 사회 일각의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문했다.

“일본의 임금은 이미 충분히 높다. 더 인상할 필연성이 과연 있는지 토론하지 않으면 안 된다. 회사는 단기적인 상황뿐 아니라 중장기적인 상황을 생각하면서 이런저런 판단을 해야 한다. 노조에는 ‘환율 변동이나 그 밖의 요인으로 실적이 좋을 때 그에 맞춰 (상여금으로) 보상해 나가자’고 이야기한다. 노조도 이를 상당 부분 이해한다. 우리 회사에선 경영진과 노조가 대화로 문제를 푸는 데 별 어려움이 없다.”

―혼다에 근무하면서 개인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해 온 것은 무엇인가.

“나는 비교적 재주가 많지 않은 편이라서 동시에 여러 가지를 할 수 없다. 그래서 우선순위를 정했다. 일이 첫째고 두 번째가 가정이었다. 그 외에는 하고 싶어도 할 만한 시간이 없었다. 취미라든지 친척들을 위한 당연한 인사치레까지 도외시하고 일 중심으로만 생활해 왔다.”

○ 후쿠이 다케오 혼다 사장은

1944년 도쿄 출신으로 1969년 와세다(早稻田)대 응용화학과를 졸업하고 그해 혼다에 입사했다. 일찍부터 ‘사장감’으로 주목받아 연구개발 분야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혼다기술연구소 사장이던 2003년 6월 제6대 사장으로 발탁됐다. 기술연구소 사장이 본사 사장으로 승진하는 것은 지금까지 한 번도 깨진 적 없는 혼다의 전통이다. △1944년 도쿄 출생 △1969년 와세다대 응용화학과 졸업 혼다 입사 △1979년 혼다기술연구소(자회사) 주임연구원 △1982년 혼다레이싱(자회사) 주임연구원 △1987년 혼다레이싱 사장 △1988년 본사 이사 △1990년 혼다기술연구소 전무 △1992년 미국 혼다매뉴팩처링 사장 △1996년 본사 상무 △1998년 혼다기술연구소 사장 △1999년 본사 모터스포츠 담당 전무 겸임 △2003년∼현재 본사 사장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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