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美노병 감동시킨 ‘李대사 감사 외교’

  • 입력 2007년 1월 31일 03시 00분


이태식 주미 한국대사(왼쪽)가 지난해 12월 초 몬태나 주 미줄라의 로즈메모리얼 공원에 위치한 6·25전쟁 기념비 앞에서 헌화한 뒤 묵념하고 있다. 1997년 설립된 기념비에는 6·25전쟁에서 사망한 몬태나 출신 병사 138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사진 제공 주미 한국대사관
이태식 주미 한국대사(왼쪽)가 지난해 12월 초 몬태나 주 미줄라의 로즈메모리얼 공원에 위치한 6·25전쟁 기념비 앞에서 헌화한 뒤 묵념하고 있다. 1997년 설립된 기념비에는 6·25전쟁에서 사망한 몬태나 출신 병사 138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사진 제공 주미 한국대사관
6·25전쟁 참전용사에 대한 이태식 주미 대사의 ‘여러분 덕분에…’라는 감사표시 외교가 미국인 노병(老兵)과 그 가족에게 잔잔한 감동을 남기고 있다.

29일 주미 대사관에 따르면 이 대사의 지방출장 때 ‘첫 행사’는 그 지역의 6·25전쟁 참전기념비에 헌화하는 일이다. 이달 중순 샌디에이고 방문 때도 그랬고, 지난해 12월 몬태나 주 빅스카이에서 열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5차 협상에 참석했을 때도 그는 협상장에서 350km 떨어진 미줄라를 찾았다. 이 대사는 워싱턴의 6·25전쟁 기념공원에 매주 수요일 새 화환을 가져다 놓는 일을 2005년 10월 부임 이래 계속해 왔다.

그는 미줄라에서 참전용사 14명을 만나 “오늘의 한국은 여러분이 목숨 걸고 싸워준 덕분에 존재할 수 있었다”며 삼성전자와 LG전자가 협찬한 휴대전화를 선물했다. “한국기업이 이렇게 크게 성장한 것 역시 여러분의 희생 덕분”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여든을 바라보는 참전노병들은 “6·25전쟁이 잊힌 전쟁(forgotten war)으로 불리지만 이 대사를 보니 결코 그렇지 않은 듯하다”고 화답했다고 대사관 측은 전했다.

이 대사의 참전비 헌화 소식이 전해지면서 당시 FTA 협상장 주변에서는 작은 해프닝이 벌어졌다. 미국무역대표부(USTR) 직원 2명이 “우리 아버지도 참전용사다. 대사의 연설을 전해 듣고 아버지 생각이 났다. 눈물이 나 혼났다”고 말했고,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재개를 촉구하기 위해 나온 농축산업 이익단체(American Farm Bureau) 직원 2, 3명도 “사실은 우리 아버지도…”라고 나선 것이다.

첨예한 무역이익을 놓고 줄다리기를 하던 협상이었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은 ‘6·25전쟁이 지켜낸 한국의 자유’가 한미관계를 끈끈하게 잇고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주미 대사관 관계자는 “발전한 한국의 상징물처럼 된 휴대전화를 협찬 받아서 이 대사가 참전용사에게 직접 전달한 것만 지난 6개월 동안 50개가량 된다”고 말했다.

김승련 워싱턴=특파원 srkim@donga.com

  • 좋아요
    1
  • 슬퍼요
    1
  • 화나요
    1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1
  • 슬퍼요
    1
  • 화나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