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천광암]日 ‘식객 변호사-문간방 변호사’

  • 입력 2007년 3월 1일 03시 00분


지난해 10월 일본 변호사 연수생 꼬리표를 뗀 O(31) 변호사는 홋카이도 삿포로의 K(55) 변호사 개인 사무실에 전화와 컴퓨터가 1대씩 놓인 책상을 마련했다.

판검사 임용을 받지 못한 새내기 변호사가 연봉 600만 엔(약 4800만 원) 정도를 받고 선배 변호사 밑에서 일하는 것은 일본에서 흔한 관행이다. 이들은 흔히 ‘식객(食客) 변호사’로 통한다.

O 변호사도 크게 보면 이 범주에 속한다. 그러나 O 변호사는 대부분의 ‘식객 변호사’와도 딴판이다. 그에게는 정해진 급여가 없다. 번 만큼 가져간다.

수입이 많지 않은 O 변호사는 K 변호사가 빌려 준 100만 엔을 까먹으면서 살림을 꾸린다. 사건도 직접 수임하고 잔일도 도맡아 처리해야 한다.

일본에서 O 변호사와 같은 부류를 점잖게는 ‘사무소 내 독립채산 변호사’로, 터놓고는 ‘문간방 변호사’라고 부른다.

최근 일본변호사연합회가 이 제도를 확산시키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고 아사히신문이 전했다. 변호사연합회는 제도의 장점을 홍보하는 문서를 전국의 개인 변호사들에게 보내고 성공 사례를 소개한 책자도 배포한다.

문간방 제도의 보급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일본의 변호사 취업난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새내기의 궁박한 처지를 틈타) 월급 없이 부려 먹겠다는 것이냐”며 눈을 흘기기도 한다.

법과대학원(로스쿨) 졸업생이 처음 법조계에 발을 내딛는 올해 변호사 자격증을 받는 인원은 2500명. 지난해보다 1000명이나 많다. 반면 새내기 법조인에 대한 신규 수요는 2000명을 조금 넘는다. 400∼500명이 실업자 신세를 면치 못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일본의 변호사 수는 10년 뒤 지금의 2배인 4만7000명, 30년 뒤 9만5000명으로 늘어나 취업난은 갈수록 심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일 양국의 사법개혁 논의·추진 과정을 보면 핵심 중 하나가 로스쿨 도입과 그에 따른 ‘법조인 증원’으로 같다. 하지만 속도에선 일본이 반 발짝 정도 앞서 가고 있다. 한국에서도 머잖아 문간방 변호사 시대가 열릴 수밖에 없다.

장밋빛 꿈에만 취해 육법전서를 옆에 끼고 청춘을 고시촌에 묻으려 하는 한국의 수재들이 곰곰 되새겨 봐야 할 미래상이 아닐까. 아니, 그런 시대가 이미 와 있다는 푸념으로 변호사 업계는 벌써부터 술렁거린다.

천광암 도쿄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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