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동맹의 균열 문제가 신문과 방송, 학자들 사이에서 논의된 지 이미 오래다. 사는 일에 바쁜 서민들이나 하루하루의 일상에 시달리는 월급쟁이들에게 동맹 같은 추상적, 군사적 화제는 더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동맹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20년 전에도 있지 않았소?’라고 묻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많다. 신문에 시끄럽게 보도되다가 슬그머니 사라지는 일시적 얘깃거리 정도로 치부되는 경향마저 있다. 동맹이 오래 지속되다 보니 생긴 ‘심드렁한’ 심리의 반영 같기도 하다.
나에겐 비교적 속내를 나누며, 서로 존경하며, 다정하게 지내는 오랜 중국인 전문가 친구가 많다. ‘우정도 공짜가 없다. 지극한 정성과 일관성을 지녀야 참된 우정이 생긴다’라고 가르쳐 주신 부친의 말씀을 따른 덕분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중국에서 공부하신 부친 덕분에, 또 부친이 지어 준 ‘오공단’이라는 이름 덕에 생긴 친구들도 있다. 얼마 전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이런 친구들 중 한 오랜 지기에게서 간담이 서늘해지는 말을 들었다. 그는 중국 정책 결정자들이 자문도 가끔 하는 저명한 국제관계 교수다.
“한국 정치가 정신 나간 사람 많아”
“나의 솔직한 의견을 물으니, 대답하지요. 한국 정치가와 학자들 중 정신 나간 사람이 좀 많은 것 같소. 미국이 좀 건방진 것 같아도 미국처럼 힘 있고, 남을 도와주려고 하는 국가는 별로 없소. 그런데 요즘 한국이 아예 (미국과의) 동맹을 깨려고 작정을 했는지, 내가 봐도 아슬아슬하오. 이런 식으로 가다가 미국이 덜컥 한반도에서 나가겠다고 하면 좋아할 사람은 김정일과 우리 중국 아니겠소? 인접국이 강대해지면 힘없는 국가가 피해를 보기 마련이고, 그런 의미에서 중국도 예외는 아니지요. 역사적으로 주변의 작은 국가들에 ‘조공 바쳐라’, ‘사신 보내라’ 식의 오만하던 옛 모습이 중-한(中-韓) 역사에 나와 있지 않습니까? 정직하게 한마디 하겠소. 미국인들만 한국을 떠나 보소, 제일 활짝 웃을 나라는 중국입니다. 미국을 꽉 껴안고 좋은 동맹을 유지하면 중국이 제 아무리 강한 나라가 되어도 한국을 건드릴 생각을 못해요.” 그러고는 그는 미소를 지으며 “정직하게 살기도 해야지만, 밥도 먹어야 사니까, 내 이름은 밝히지 마시오”라고 했다. 그런 그의 동그란 얼굴과 동그란 눈에서 진심을 읽을 수 있었다.
한국은 언제나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건너뛰어도 되는 나라’라는 인식이 미국인들 사이에 퍼져 있음을 부인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이 될 것이다. 미국인들의 이런 시각은 미국인 스스로가 만들어 낸 그릇된 인식의 탓이 아니라 한국인의 근시안적, 감정적 태도가 만들어 낸 결과임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미국 경제계가 한국에 대해 보여 주고 있는 이 같은 시각의 극명한 사례가 미국 항공사의 새로운 직항로 개선 시도다.
한동안 적자에 허덕이던 미국 항공사들이 9·11사태 이후 취소했던 황금 항로들을 다시 열기 시작했다. 워싱턴∼도쿄 직항이 작년 10월 개설되었고, 이번엔 워싱턴∼베이징 항로가 이달 중 열린다. 미국 일본 중국의 경제와 정치 영향력은 이런 직항로를 통해 더 상호 보강되고 확장될 것으로 전망된다. 도쿄와 베이징이 워싱턴과 직결되는 즈음, 까맣게 잊혀져 가는 서울을 생각하면 착잡한 마음이 절로 든다. 한국 정치가들과 시민들의 단선적이며 감정적인 태도가 만들어 낸 한미 관계의 현주소가 19세기 말 동북아 질서의 재현을 불러오지 않나 하는 불안감에 안절부절못할 뿐이다. 한국은 언제나 건너뛰어도 좋은 국가가 되고 있는 것이다.
北-中만 도와주는 일 왜 하는지…
만일 미국이 한국에서 완전 철수를 한다면 아마 평양의 지도부는 “조국 통일 위업의 혁신적 첫걸음이 시작되었다”라는 당 통신문을 전국에 돌리고,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을 것이다. 중국은 ‘한국도 북한도 중국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며 21세기 중국 위주의 새 전략 지침을 강화할 것이다.
이런 가운데 실리를 잃고, 그야말로 본전도 못 찾을 나라는 한국뿐이다. 동맹의 약점을 보강해 가며 국가의 장기적 실리를 찾아야 할 때다. 작고 소소한 과거의 실수를 잊고 적극적이고 신뢰하는 한미 관계가 복원되도록 전 국민과 양식 있는 지성인, 정치 지도자들이 힘을 합해야 할 때다.
오공단 미국 국방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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