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때문에 폴슨 장관의 행보는 주요 대미 수출 국가들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미국 적자의 짙은 먹구름이 태풍으로 변해 아시아를 강타할 가능성 때문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막바지 협상을 앞둔 정부와 재계 관계자들도 바짝 긴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고개 드는 대(對)아시아 강경론=민주당 대선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은 지난주 폴슨 장관과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에게 미국 경제 보호를 위해 조지 W 부시 정부의 정책 수정을 촉구하는 편지를 보냈다.
힐러리 의원은 “이번 증시 급락은 미국 경제의 취약성을 보여 주는 단적인 예”라며 “기존정책을 수정하지 않으면 미국은 앞으로 더 큰 위협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이대로 간다면 우리가 중국과 일본 경제의 인질이 될 판”이라며 “경제의 주권을 되찾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무역적자 수치가 발표된 직후 민주당도 부시 행정부에 비슷한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민주당은 이 편지에서 일본과 중국, 유럽연합(EU)을 ‘주요 3개국’으로 규정하고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무역상품에 대한 관세 강화 △무역 분야의 특혜 철폐 등을 요구했다. 이들 국가가 미국에 적용하는 무역장벽과 불공정 관행에 대해서도 적극 대응을 주문했다.
이에 대해 부시 행정부는 앞으로 90일 내에 관련 정책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샌더 레빈 미 하원 무역소위원장도 조만간 중국의 대미 수출품 보조금 지급에 대해 보복관세를 매기는 법안을 제출할 계획이다.
▽“아시아가 우리를 갉아먹는다”=이런 강경론의 바탕에는 지난 몇 년간 미국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확산돼 온 중국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이 자리 잡고 있다. 월마트 등을 통해 들어오는 중국의 값싼 제품과 현지의 저가 노동력 때문에 미국인들이 일자리를 뺏긴다는 인식이 퍼져 있는 것.
최근 발표된 무역적자 수치는 이들의 불안감에 기름을 부었다. 지난해 미국의 무역적자는 전년보다 6.5% 늘어난 7636억 달러. 대(對)중국 무역적자 규모는 2325억 달러로 전체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한다.
도요타와 혼다 등을 앞세워 미국 시장을 공략하는 일본에 대한 눈길도 곱지 않다. 특히 지난달 다임러크라이슬러가 공장 2곳 폐쇄 및 1만3000명의 노동자 감원 결정을 내리면서 이런 분위기는 더 강해졌다.
최근 발표된 신규 주택매매와 실업수당 청구 건수, 소비자신뢰지수 등 각종 수치도 부정적이다.
민주당이 장악한 의회 내에서는 대외 경제정책을 수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2월 초 미 무역대표부(USTR)의 수전 슈워브 대표는 의회에 출석해 자유무역의 이점을 강조하다가 면박만 당했다. 의원들은 “해외의 값싼 노동력 때문에 우리 국민이 일자리를 잃는 것은 어떻게 보상할 것이냐”며 냉소적인 공격을 쏟아 냈다.
▽한국으로 불똥?=이런 분위기는 진행 중인 한미 FTA 협상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 대선주자인 존 에드워즈 전 상원의원은 “한국이 자동차와 다른 분야에서 시장을 개방할 자세가 돼 있다는 점을 확인하기 전까지 FTA 협상을 중단하라”고 부시 행정부에 요구했다. 뉴욕타임스는 민주당 의원들의 말을 빌려 “부시 행정부가 진행 중인 FTA 협상이 국회의 승인을 받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국과의 정보기술(IT) 거래가 활발한 실리콘밸리에서도 “미국의 무역적자가 한국과의 사업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이 나온다.
미 전자산업협회의 롭 멀리건 부회장은 “한국과의 활발한 IT 교역이 (FTA 협상에서 난항을 겪고 있는) 자동차와 의약품 분야 때문에 어려움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고 진단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