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러시아 정보기관 전문가가 방송에서 러시아 정부를 비판한 뒤 며칠 만에 총격을 받아 중태에 빠졌다고 미국연방수사국(FBI)이 3일 밝혔다.
1980년대 미 상원 정보위원회에서 근무하는 등 러시아 전문가로 활동해 온 폴 조열(53·사진) 씨는 1일 워싱턴의 국제스파이박물관 앞에서 옛 소련 국가안보위원회(KGB) 간부인 올레크 칼루긴 씨를 만나고 귀가하던 도중 워싱턴 교외 자택 인근에서 괴한의 총격을 받았다.
경찰은 흑인 남성 2명이 총을 발사한 뒤 도주했다는 목격자의 진술에 따라 수사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조열 씨가 지난달 25일 NBC TV ‘데이트라인’ 프로그램에 출연해 지난해 11월 방사능 물질에 독살된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전직 요원인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 씨 사건의 배후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있다고 주장한 지 나흘 뒤에 일어난 것이어서 주목된다.
‘데이트라인’은 영국과 러시아 전문가, 리트비넨코 씨의 가족, 전 KGB 고위간부를 인터뷰해 ‘비밀요원의 마지막 날들’이라는 제목으로 독살 사건을 집중 보도했다.
조열 씨는 방송에서 “방사능 물질 ‘폴로늄 210’은 암살을 위해 특수 제작된 독약”이라며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러시아 정부가 비판자들을 침묵하게 만들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대니얼 맥그로리 영국 더 타임스 기자도 프로그램 방영 직전인 지난달 20일 런던에서 심장발작으로 갑자기 숨져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러시아에서는 푸틴 대통령에 반대하는 언론인, 정치인, 정보기관 요원들이 잇달아 의문의 죽음을 당해 왔다. 지난해만 해도 리트비넨코 씨 외에 9월 안드레이 코즐로프 러시아 중앙은행 부총재, 10월 여기자 안나 폴릿콥스카야 씨가 총격으로 사망했다.
이번 사건에 대해 FBI 측은 “러시아 정보기관과의 관련성을 확인하지 못했다”며 “단순 강도사건 쪽에 무게를 싣고 있다”고 밝혔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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