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가나가와(神奈川) 현 야마토(大和) 시 외곽에 자리 잡고 있는 시코(思考)엔지니어링은 전형적인 ‘축소지향형’ 일본 기업이다.
한마디로 ‘물건을 작게 만들어 성공한 회사’다.
모터를 전문 생산하는 이 회사의 제품은 쌀 한 톨만큼 작다.
이제는 생필품이 된 휴대전화와 컴퓨터가 고성능을 유지하면서도 지금처럼 작아질 수 있었던 데는 시코엔지니어링의 초소형, 초경량 모터도 한몫을 했다.
시라기 마나부(白木學) 시코엔지니어링 사장은 “제품이 작아지면 들어가는 재료와 소모하는 에너지가 줄어드는 반면 편의성과 응용 범위는 더 커진다”며 “작지 않으면 제품으로서의 가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신기술 모터, 1년에 1개꼴로 개발
시코엔지니어링이 주로 생산하는 모터는 컴퓨터의 냉각장치에 쓰이는 팬 모터, 휴대전화의 진동 모터, 휴대전화에 달린 카메라오토포커스(AF)용 모터 등이다.
이 회사는 1995년 누구도 시도한 적이 없는 지름 4mm짜리 세계 최소형 진동모터를 개발해 모토로라에 납품했다. 이어 현재 3.2mm 모터를 만들어 전 세계 휴대전화 진동모터 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2.8mm 모터 개발에 성공해 상용 생산을 눈앞에 두고 있다.
시코엔지니어링의 진동모터는 의료기기와 비디오게임(콘솔게임)의 조이스틱에도 사용된다. 모터가 회전할 때 발생하는 진동을 각각 응용한 것이다.
2004년에는 휴대전화에 달린 AF용 모터를 세계 최초로 만들어 샤프에 납품하고 있고 국내 휴대전화 업체인 삼성전자, 팬택에도 조만간 납품할 예정이다. 지난해는 경쟁 제품보다 무게를 40% 줄인 900g짜리(출력 180W) 자전거용 모터를 개발해 화제가 됐다.
히라노 노리미쓰(平野紀光) 상무는 “종전의 모터는 가운데 있는 철심 주변을 자석이 도는 방식이었지만 우리가 생산하는 모터는 중앙의 철심을 없애 소형 경량화가 가능했다”면서 “1년에 1개꼴로 신기술을 이용한 모터를 선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차별화된 제품은 독창적 사고에서 나온다
당시 이 회사는 현재의 건물이 아닌 인근의 2층짜리 조립식 건물을 쓰고 있었다. 인텔 측이 남루한 사옥을 보고 기술력을 반신반의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시라기 사장은 떳떳했다.
그는 “우리가 파는 것은 모터지 건물이 아니다. 건물을 짓는 데 돈을 썼으면 연구비나 인건비 등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한 필수 투자는 불가능했다”며 인텔 측을 설득했다.
시라기 사장은 “지금도 영업이익의 70∼80%는 연구개발(R&D) 분야에 재투자하고 있다”면서 “남들과 차별화된 제품을 만드는 것은 결국 독창적 사고에 기반한 R&D”라고 강조했다.
시코엔지니어링은 1976년 제조업이 아니라 기술컨설팅회사로 출발했다.
800여 건에 이르는 모터 관련 특허를 가지고 일본 내 20여 개 회사의 기술 자문에 응하면서 로열티를 받는 식으로 회사를 운영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들어 일본 제조업체들이 엔화 가치 상승을 이기지 못해 공장을 중국과 동남아시아로 옮겨가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시코엔지니어링이 소유한 특허는 일본 국내 특허여서 해외에서는 특허권을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결국 1990년 직접 모터 생산에 뛰어들어 제조업체로 변신했고 한 해 매출이 500억 원에 이르는 알짜 중소기업으로 성장했다.
시라기 사장은 “제조업에 뛰어든 지 4, 5년 만에 인텔, 모토로라 등 굴지의 세계적 기업과 대등하게 파트너 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것은 탄탄한 기술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머리는 일본에, 손은 중국에
시코엔지니어링은 제품 개발 및 연구는 가나가와 본사에서 하지만 생산은 중국 상하이에 있는 6개 현지 공장에서 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여느 제조업체와 달리 시코엔지니어링은 부품 생산, 금형 설계, 조립 등 일체의 생산 공정을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코엔지니어링은 이를 위해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지에 있던 생산 공장을 모두 상하이로 옮겨 복합 생산기지를 만들었다.
각지에 분산돼 있던 공장을 한곳에 모아 ‘기술의 집약’ ‘재료의 절약’ ‘재고 관리의 통일’ 등 규모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다.
시라기 사장은 “1994년 중국에 진출할 당시 20여 명이던 직원이 7000명까지 늘었다”면서 “제품 아이디어, 설계, 생산 등 일련의 과정이 모두 회사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제품 개발이 빠르고 제품 개선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가 신제품을 내놓으면 경쟁 업체들이 모방 제품을 내놓기 때문에 기술 유출을 막는 게 관건”이라면서 “생산 체제의 내재화로 기술 노하우가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원천봉쇄했다는 면에서 의미가 크다”고 덧붙였다.
시라기 사장이 말하는 ‘경쟁력’
“기술에는 한계가 없다. 독창적으로 思考하라”
시라기 마나부 시코엔지니어링 사장은 “경쟁력은 독창적인 사고에서 나온다”며 사고의 중요성을 수차례 강조했다.
그는 아예 회사 이름을 ‘시코(思考)’라고 지었다. 기업의 로고도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본떠 만들었고 회사 곳곳에는 로댕의 조각상이 자주 눈에 띈다.
시라기 사장은 집무실 책상에 놓인 조각상을 가리키며 “누구나 생각을 하며 살지만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제품을 응용 모방하는 데 그치는 게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본 경제가 경기 침체로 ‘잃어버린 10년’을 보내는 동안에도 우리는 불경기를 겪어본 적이 없다”면서 “우리가 만드는 제품은 기존 시장을 나눠 먹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시코엔지니어링은 컴퓨터 시장이 포화되자 휴대전화 진동모터로 눈을 돌렸고 다시 휴대전화에 달린 카메라오토포커스용 모터로 끊임없이 주력 제품을 개발해 왔다. 최근에는 모터를 정보기술(IT)이 아닌 동력 생산용으로도 사용하는 데 연구를 집중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
시코엔지니어링이 만든 제품은 항상 시장을 선도해 왔기에 앞으로 나올 신제품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그는 “연구개발 단계여서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곤란하다”면서도 “휴대전화나 컴퓨터용 소형 모터와는 차원이 다른 소형 고성능모터로 여러 용도로 응용할 수 있는 제품”이라고만 대답했다.
시라기 사장은 “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삶의 방식은 제각각이어도 누구나 똑같은 공기를 마시며 살듯이 세계 어디에서도 통할 수 있는 ‘공기와 같은 제품’을 만드는 게 시코엔지니어링의 목표”라며 웃었다.
가나가와=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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