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인에게 정치 성향을 물어보면 ‘좌파’나 ‘우파’ 또는 ‘진보’ ‘보수’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많아도 ‘중도’라고 답하는 사람은 보기 드물었다. 지난 대선들을 되돌아보면 ‘극우파’가 의외의 득세를 한 적은 있어도 ‘중도파’가 주목할 만큼 표를 얻은 적은 없었다.
대선 후보인 프랑수아 바이루(56·사진) 프랑스민주동맹(UDF) 당수의 지지율 급상승에 사람들이 비상한 관심을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최근 조사에선 그가 결선투표에 진출한다면 우파의 니콜라 사르코지 후보나 좌파의 세골렌 루아얄 후보를 모두 이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가운데 그가 1차 투표 지지율에서도 2위인 루아얄 후보와의 격차를 점점 줄이고 있어 프랑스 대선은 갈수록 흥미를 더하고 있다.
바이루 당수는 스스로를 ‘중도파’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그는 지난주 초 TV에 출연해 “이 나라는 오랫동안 좌파와 우파 사이의 정쟁에 시달리면서 점점 가난해졌고 경쟁력이 약해졌다”고 꼬집었다.
그는 “대통령에 당선되면 좌파 총리를 임명하고 좌우파를 아우르는 내각을 구성하겠다”고 약속했다.
TV 출연 이후 그의 지지율은 놀랍게 상승해 지난 주말에는 19%까지 이르렀다. 2위인 루아얄 후보에게 5%가량 뒤지는 성적이다.
정치 평론가들은 “지지층이 분명치 않은 중도파가 뜨는 것은 프랑스 정치 역사상 처음 있는 현상”이라고 입을 모은다.
게다가 대선 출마 선언 직후 5% 정도였던 지지율이 몇 달 만에 이렇게까지 상승한 후보도 이전에는 없었다.
그가 프랑스 정치판을 주름잡아 온 엘리트들에 비해 내세울 게 없다는 점도 눈에 띈다.
그는 피레네 산맥을 끼고 있는 프랑스 남부의 보르데르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보르도대를 졸업한 뒤 젊은 시절 고향에서 농장 일을 거들면서 문학 교사로 일했다.
1980년대 중반 정치에 입문해 1993∼97년 동거 정부 시절 교육부 장관을 지냈고 1998년부터는 UDF를 이끌어 왔지만 그의 ‘중도파’ 정치는 크게 주목을 끌지 못했다.
그의 주 지지층은 고등교육을 받은 도시 중산층인 것으로 분석됐다. 계속되는 경제 실정과 사회 분열에 위기의식을 가진 이들이 “나라를 하나로 묶는 대통령이 필요하다”는 바이루 당수의 주장에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파리=금동근 특파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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