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하종대]인민 없는 인민대표회의

  • 입력 2007년 3월 8일 03시 00분


중국 베이징(北京)에서는 ‘양회(兩會)’라고 부르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대)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전국위원회 회의가 동시에 열리고 있다.

의회 격인 전국인대는 중국 헌법상 국가의 최고 권력기관이다. 헌법의 개정과 법률의 제정은 물론 국가 예산 결산의 심사와 비준 등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다.

정협은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한 중국 공산당이 1949년 9월 이념과 소속은 달라도 정치에 함께 참여하도록 하겠다며 각 정당 대표와 단체, 소수민족을 묶어 구성한 정책자문기구다.

양회는 지역 대표와 각계 대표가 모두 모여 국사를 논의한다는 점에서 중국 최고의 정치행사다.

중국의 언론들은 이번 대회의 주제는 인민 대중의 고통을 줄이기 위한 ‘민생 문제’라며 대대적인 선전 작업을 벌였다.

중국 재정부는 5일 전국인대에 제출한 올해 예산 초안에서 대표적인 민생 현안인 교육비 문제와 진료난, 취업난 해결을 위해 3190억5700만 위안(약 39조 원)을 투입하겠다고 보고하면서 민생 예산을 지난해보다 25.3%(644억8400만 위안)나 늘렸다고 생색을 냈다.

그러나 늘어난 민생 예산은 중국의 내년도 재정지출 4조6514억8500만 위안의 1.4%에 불과하다.

더욱이 명칭은 전국인민대표대회지만 ‘인민 대중의 목소리’가 끼어들 자리는 없다. 대회가 열리는 베이징의 인민대회당 주변은 경비가 삼엄하다 못해 살벌하다. 인민대회당 앞의 톈안먼(天安門) 광장은 대회 기간에 아예 봉쇄됐다. 인민대회당에 들어가려면 3∼5번의 검문을 거쳐야 한다. 그것도 미리 허가된 출입증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인민의 대표가 모이는 대회당 주변엔 인민 대중은 눈 씻고 봐도 없다. 오직 인민을 감시하는 공안이 있을 뿐이다. 혹시라도 누가 와서 공산당 지도부와 다른 의견을 표출할까 감시하기 위해서다.

인민대회당 안에 들어가도 인민이 보이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각계 대표라고 하지만 진정으로 그 분야를 대표하는 사람은 드물다. 수안나(舒安娜·여) 정저우(鄭州) 시 정협 위원은 “124명의 농업계 위원 가운데 농사를 짓는 농민은 단 한 사람도 없다”고 한탄했다. 정협에 참가하는 중국민주동맹, 중국농공(農工)민주당 등 8개 정당이 중국 공산당의 ‘들러리’라는 것은 이제 중국인도 안다.

지역을 대표하는 인민대표 역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이다. 안후이(安徽) 성 출신의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은 티베트 자치구의 인민대표다. 그는 1987년 10월 티베트에서 대규모 독립시위가 일어나자 무력으로 진압한 사람이다. 톈진(天津) 출신의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간쑤(甘肅) 성의 인민대표로 돼 있다.

이러니 정부 보고와 예산, 결산이 제대로 심의될 리 없다. 지난해 정부공작보고 중 고친 곳은 단 17군데. 그것도 자구를 약간씩 수정한 게 전부다. 서부개발 자금의 조달 통로를 ‘차츰 차츰 건립한다’를 ‘좀 더 빠르게 건립한다’로 바꾼다든지, ‘자원의 절약과 합리적 사용을 촉진한다’를 ‘자원의 합리적 개발과 절약을 촉진한다’로 바꾸는 식이다.

오죽하면 인민대표는 ‘만나면 악수하고 개회하면 손들고 끝나면 박수치는(見面握手 開會擧手 閉會拍手) 삼수(三手)대표’라는 말이 나왔겠는가.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요즘은 공산당 내에서조차 민주화 요구가 터져 나온다. 이런 방식으로는 도저히 인민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는 자성에서다. 그러나 ‘지금은 시기가 아니다’는 원 총리의 말 한마디에 민주화 목소리는 쏙 들어가 버렸다.

중국에서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민주정치가 꽃피는 날은 언제일까.

하종대 베이징 특파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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