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밋빛 미래 ‘유럽헌법 부활’에 달렸다

  • 입력 2007년 3월 21일 03시 00분


《1957년 3월 25일. 유럽 6개국의 주도로 새로운 형태의 지역 기구인 유럽경제공동체(EEC)를 만들기 위한 조약이 이탈리아 로마에서 체결된 날이다. ‘경제’를 내걸었지만 ‘로마조약’의 핵심 목적은 평화 정착이었다. 전쟁으로 유럽 대륙이 황폐해지는 것을 막자는 것이었다. 50년이 흐른 지금 이 목적은 성공적으로 달성됐다. 6개국에서 출발한 ‘단일 유럽’은 유럽연합(EU)이라는 이름 아래 27개국으로 확대됐고 정치 경제적 측면에서 세계 질서 속의 큰 축으로 우뚝 섰다. 그러나 급격한 확대로 인한 피로현상도 감지된다. 여러 나라에서 유럽 헌법이 부결되는 부작용과 동과 서, 부국과 빈국으로 갈라지는 분열 조짐도 일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난 50년은 의심할 바 없이 성공이었지만 앞으로 50년의 미래는 불투명하다”고 입을 모은다.》

▽평화와 공동 번영 정착=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 씨는 “EU는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황폐해진 유럽 대륙에 평화와 번영을 가져오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남부 유럽 일부 국가의 독재와 동유럽의 공산주의도 EU의 확대 속에 자취를 감췄다. 포르투갈 출신인 조제 마누엘 바호주 EU 집행위원장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법대 학생이던 1960년대 후반에는 프랑스의 연애 소설을 읽는 것도 금지됐다”며 달라진 50년을 회고했다.

EU는 또 공동 번영의 초석을 다졌다. 아일랜드 스페인의 경제가 EU 가입 덕택에 크게 성장한 것이 대표적인 예.

덩치가 커지면서 국제무대에서 입김도 세졌다. 원조, 무역, 외교 등 비군사적인 방법으로 분쟁지역 문제 해결을 주도함으로써 힘을 앞세워 온 미국의 대안으로 자리를 잡았다.

▽세계 최대 경제공동체=지난해 EU 25개 회원국의 국내총생산(GDP) 합계는 14조2000억 달러. 미국보다 9000억 달러나 많으며 전 세계 총생산의 30%를 차지한다. 인구도 약 4억9000만 명으로 중국 인도 다음이다. 이름에 걸맞게 세계 최대의 경제 블록이 된 것.

이 같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태어난 유로화도 달러화의 위상을 위협한다. 지난해 10월 말까지 전 세계에서 유통된 유로화는 미화로 환산해 8000억 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추산됐다. 실생활에 사용하기 시작한 지 5년 만에 기축통화인 달러를 따라잡을 정도로 비약적 발전을 한 셈이다.

한동안 정체 상태였던 경제 성장도 개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올해 EU의 경제성장률은 2.7%로 미국의 2.5%를 앞지를 것으로 전망됐다. 호아킨 알무니아 EU 경제 및 통화 담당 집행위원은 최근 “유럽이 무기력한 성장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해결해야 할 과제 산적=EU의 미래가 장밋빛만은 아니다. 우선 2005년 부결된 유럽헌법을 부활시키는 게 가장 큰 과제다. 올해 상반기 EU 의장국인 독일은 25일 발표할 ‘베를린 선언’에 헌법 부활 문제를 포함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반대도 만만치 않아 전망은 불투명하다.

EU의 미래를 위한 ‘마스터플랜’이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마고 월스트롬 EU 집행위 부위원장은 EU를 ‘조각 그림 맞추기 퍼즐’에 비유하면서 “EU는 여전히 모든 사안을 조각조각 맞춰가는 중으로 완벽한 모습을 띠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EU를 어디까지 확대할지도 구체적 계획이 없다.

EU의 덩치가 커짐에 따라 구성 국가들의 이해관계 차이로 인한 새로운 분열 조짐도 떠오른다. 기존 회원국과 신규 회원국 간의 노동 정책 및 보조금 문제 갈등이 대표적이다. 옛 공산권 국가들에서는 EU 가입에 대한 환상이 사라지면서 민족주의가 부활하고 있다. 부국과 빈국 사이의 GDP 차이가 최고 11 대 1에 이르는 경제력의 불균형도 지난한 과제다. 문제는 이런 갈등을 앞장서서 해결해야 할 영국 프랑스 등 주도국 정상들이 레임덕을 겪고 있어 EU가 ‘지도력 부재’에 처해 있다는 점.

자크 들로르 전 EU 집행위원장은 “만약 이번에 헌법 부활을 비롯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면 EU의 미래는 비관적이다”고 진단했다.

파리=금동근 특파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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