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포위츠 총재는 국방부 부장관 시절 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을 사실상 기획 지휘한 신보수주의(네오콘)의 대표 인사. 이라크전쟁을 기획해 실행에 옮긴 핵심 인물이기도 하며 이 전쟁의 이론적 기초인 ‘부시 독트린(선제공격론)’ 역시 그의 작품이다.
그런 그가 2005년 3월 세계은행 총재로 지명됐을 때 언론들은 그를 국방장관 출신의 로버트 맥나마라 전 총재(재임 1968∼81)에 비교했다. 맥나마라 전 총재는 세계은행에 빈곤, 교육, 건강이라는 새로운 좌표를 설정하고 밀어붙여 세계은행의 위상을 확립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울포위츠 총재 역시 타고난 전략가로 꼽힌다. 그러나 그가 뛰어난 행정가는 아니라는 것이 캐시디 기자의 평가다. 취임 2년이 다 되도록 세계은행 안팎에선 온갖 잡음과 구설수가 끊이지 않는다.
울포위츠 총재가 설정한 새로운 목표는 반(反)부패 캠페인. 후진국 금융지원 조건으로 해당 정부의 인권 개선과 투명성을 내세웠다.
취임 직후 그는 우즈베키스탄의 인권탄압을 이유로 일방적으로 원조계획을 철회해 버렸다. 담당 국장조차 나중에 전화 한 통 받은 게 전부였다. 그는 이어 아프리카 차드를 포함해 여러 국가에 대한 원조 계획도 중단시켰다.
그러나 그의 일처리 방식은 곧 거센 저항에 직면했다. 한 전직 이사는 “울포위츠 총재가 세계은행을 미국의 외교정책 도구로 만들어 반미(反美) 국가에만 불이익을 준다”고 비판했다.
더 큰 구설수를 낳은 것은 그의 인사 스타일. 그는 워싱턴 정가의 동지들을 세계은행 주요직에 포진시켰다. 배우자나 연애 상대는 함께 근무할 수 없다는 내부 규정을 무시하고 애인을 그대로 세계은행에 근무토록 했다가 빈축을 사기도 했다. 결국 애인은 국무부로 자리를 옮겼지만 엄청난 특별급여를 받아 또 한번 구설수에 올랐다.
그는 왜 국방부에서 세계은행으로 자리를 옮긴 것일까. 이라크 정책에서 완전 배제된 뒤 세계은행에서 못다 이룬 이라크 국가 건설(nation building)의 꿈을 이루기 위해 자원했다는 게 일반적인 설이다. 지난해 말 내부 반대를 무릅쓰고 이라크 바그다드에 세계은행 상주사무소를 개설하자 “국방부에서 못다 이룬 이라크전쟁을 계속하려 한다”는 비판이 쏟아진 것도 이 때문이다.
다른 소문도 나온다. 잘못돼 가는 이라크 정책에 항의하려는 그의 입을 막기 위한 이른바 ‘침묵에 대한 보상’이었다는 것이다. 사실이라면 그는 몰락해 가는 네오콘 세력의 운명을 일찍 내다본 셈이다.
캐시디 기자는 어쨌든 울포위츠 총재의 임기가 3년이나 남았으며 그가 워싱턴의 내부 권력투쟁에 매우 노련한 인물이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울포위츠 총재도 “불평하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 일도 안 된다”며 자신의 길을 접을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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