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진당이 집권 중인 대만 정부가 최근 '장제스 유산' 청산에 힘을 쏟고 있는 데 이어 7일 새벽에는 장 전 총통이 쓰던 관저가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로 전소됐다.
타이베이(台北) 양밍산(陽明山) 중턱에 있는 '차오산싱관(草山行館)'은 장 전 총통이 대만으로 옮겨와 첫 관저로 사용했던 곳이다.
8일 DPA 통신 보도에 따르면 이날 화재는 1시간 만에 진압됐으나 200여 평 건물 내부가 모두 불타 대만의 제1호 주민증인 장 전 총통의 국민신분증과 부인 쑹메이링(宋美齡)과의 결혼 청첩장 등의 유물이 소실됐다.
정확한 화재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홍콩 일간지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는 민진당이 벌이고 있는 국민당 장제스 가문의 유산 청산 작업을 지지하는 세력의 범행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민진당은 이날 장제스 생일과 사망일을 법정 공휴일에서 제외하는 결의안을 처리했다.
타이베이 시 타오위안(桃園) 현에 있는 장제스 박물관 담장에서는 붉은색 페인트로 "장제스는 2·28 학살의 범인이다"고 쓴 글귀가 발견됐고 그의 동상도 붉은 색 페인트칠로 엉망이 된 채 발견됐다.
2·28일 학살이란 1947년 2월28일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 군이 대만 시위대를 진압해 수천 명의 사상자를 낸 사건을 말한다.
대만 독립을 강령으로 채택하고 있는 민진당의 천수이볜(陳水扁) 총통은 2000년 집권 후 중국 본토의 흔적 지우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장제스가 총재를 지낸 국민당이 본토 출신과 그 후손들을 핵심 지지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역시 청산 대상에 포함됐다.
지난해 10월부터 대만 거리나 공공건물에서 '중국' '중국인' '장제스'가 들어간 이름이 없어졌다. 타이베이의 '장제스 국제공항'은 '타오위안 국제공항'으로, '장제스 기념홀'은 '대만 민주주의 기념홀'로 각각 바뀌었다.
이날 전소된 차오산싱관은 1920년 일본인이 지은 건물로 1949년 장제스가 중국 공산당 내전에서 패배한 뒤 도망쳐와 살았다. 장제스 일가는 1950년 5월 새 관저를 지어 이사했고 차오산싱관은 여름 별장과 귀빈 영접용으로 활용했다.
화재로 전소되기 전까지는 타이베이시 문화국이 지정한 역사 건축물로 장제스 관련 유물을 소장한 박물관이었다.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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