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여 명 직원 집이 ‘출장소’다. 네모토 정장은 자기 월급 깎아 가며 지자체 합병을 막아냈다. 눈앞에 다가온 단체장 선거, 이 마을엔 나서는 자가 없다. 24년간 믿음 심어온 그가 있기에….》
일본 후쿠시마(福島) 현의 산골 마을 야마쓰리(矢祭) 정. 이 작은 기초지방자치단체의 단체장 선거가 열도 전역의 뜨거운 관심을 모으고 있다.
투표일을 열흘쯤 앞둔 11일 이곳에서는 입후보 예정자의 사전서류심사 절차가 진행됐다. 그러나 정장(町長) 후보자는 단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24년간 재임해 온 네모토 료이치(根本良一·69·사진) 정장이 불출마를 선언했지만 주민과 의회가 그의 연임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네모토 정장은 4년 전 선거에서도 건강을 이유로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러나 주민들이 몰려와 집을 둘러싸고 ‘눈물의 벽’을 쌓자 “쓰러지더라도 하는 데까지 해 보겠다”며 뜻을 꺾은 바 있다.
네모토 정장이 주민들에게서 절대적인 신임을 얻은 이유는 그가 야마쓰리 정을 주민을 위한 ‘개혁백화점’으로 만들어 왔기 때문.
야마쓰리 정은 행정창구를 연중무휴로 운영한다. 평일에는 회사원이 출근 전에 이용할 수 있도록 오전 7시 반에 문을 연다.
80여 명에 이르는 직원의 집을 ‘행정출장소’로 활용하는 제도도 독특하다. 주민들은 근처에 있는 공무원의 집에 찾아가 공공요금 납부나 각종 증명서 신청 등의 일을 볼 수 있다. 공공요금도 다른 지자체 주민이 깜작 놀랄 정도로 싸다.
이런 야마쓰리 정이 전국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은 일본 정부의 대대적인 지자체 합병방침에 맞서 네모토 정장이 ‘비(非)합병 홀로서기’ 선언을 한 2001년. 지방세 교부권이라는 ‘절대권력’을 가진 총무성을 상대로 산골 마을이 벌인 무모하기 짝이 없는 반란이었다.
하지만 야마쓰리 정은 인원 감축과 비용 절감을 통해 교부세를 대폭 줄여도 견딜 수 있는 재정 체질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의 와중에서도 네모토 정장은 일반 직원의 월급은 깎지 않았다. 그 대신 자신과 교육장을 포함한 고위직 4명의 월급은 총무과장 수준으로 깎았다.
당시 그가 의회에서 “아무리 따져도 우리가 하는 일이 총무과장보다 많은 것 같지 않다”고 한 발언은 지금도 회자된다.
‘무위지치(無爲之治·나서지 않고 다스린다)’를 연상시키는 그의 리더십도 화제다.
네모토 정장은 교육장 등 고위직에게 “솔선수범하라”며 화장실 청소까지 하도록 지시했으나 정작 본인은 하지 않았다. “전시행정으로 비친다”는 게 이유였다.
홀로서기 선언 후 불안해진 직원들이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으면 자멸한다”며 행정개혁을 재촉하기 전까지 본인은 한마디도 개혁을 거론하지 않았다.
그러나 네모토 정장은 “무사는 두 말을 하지 않는다”며 올해는 기필코 불출마 의지를 관철할 기세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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