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선적인 미국” vs “무능한 국제기구”

  • 입력 2007년 4월 17일 03시 00분


■ 국제기구-美 갈등 악화일로

여자친구의 급여 인상에 개입한 문제로 궁지에 몰린 폴 울포위츠 세계은행 총재는 12일 직원 200여 명에게 “내 실수였다”고 공개 사과했다. 그러나 그는 연설을 끝마치지 못했다. 일부 직원은 ‘우∼’ 하며 야유했고, “물러나라, 물러나라(resign, resign)”고 외쳤다.

미국과 세계 회원국의 전문직 종사자로 구성된 세계은행 직원들은 자기 조직의 수장에게 왜 이런 수모를 줬을까.

그 이면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일방주의 외교와 다자간 합의를 바탕으로 한 국제기구 문화의 정면충돌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국제기구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세계은행의 감사위원회는 15일 “이번 일은 심각한 우려 사안”이라며 이례적으로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미국 공화당과 신보수주의(네오콘) 핵심 인사에 대한 불만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울포위츠 총재는 미 국방부 부장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이라크전쟁을 기획한 네오콘 이론가의 상징적 인물이다.

▽국제기구의 불만=울포위츠 총재가 취임한 2005년 지구촌은 그가 최빈국 지원사업에 쓸 세계은행 지원금을 ‘미국의 외교정책’에 활용하지 않을까 내심 걱정했다.

우려대로 울포위츠 총재는 지난해부터 독재자의 부패 문제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그의 철학이 반영되면서 세계은행은 미군에 기지 사용을 거부한 우즈베키스탄 지원금을 독재국가라는 이유로 대폭 줄였고, 이라크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지원을 대폭 늘렸다. 이들 3국은 모두 테러와의 전쟁에서 미국에 필요한 나라이다.

뉴욕타임스는 14일 “외부 간섭을 극도로 싫어하는 세계은행 관리들은 일부 독재자가 지원금에서 몇백만 달러를 챙기더라도 ‘가난과의 싸움’에 더 주력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으며 총재와 충돌했다”고 썼다.

미국의 여타 갈등전선으로는 유엔 및 그 산하의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꼽힌다. 그 최전선에는 존 볼턴 전 유엔 주재 미국대사가 서 있었다.

2002년 ‘악의 축’ 국가로 지목된 북한 이란 이라크는 모두 핵개발 또는 그 의혹으로 IAEA의 관심 대상이 됐다. 미국은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IAEA 사무총장이 북한과 이란을 너무 부드럽게 다룬다”며 압박했다.

국무부 비확산 담당 차관 시절부터 엘바라데이 사무총장과 갈등을 빚은 볼턴 전 대사는 유엔대사로 취임한 2005년 여름부터 ‘엘바라데이 3연임 반대’ 물밑작업에 나섰다. 당시 언론은 “IAEA 관리들은 미국 정보당국의 도청설을 믿고 있다”고까지 보도했다.

이런 갈등은 엘바라데이 총장이 2005년 노벨 평화상을 받으며 일단락됐다.

▽미국의 반박=미국은 경제력에 따른 예산부담 원칙에 따라 유엔과 세계은행에서 최대 지분을 갖고 있다. 유엔 연간 예산의 22%, 세계은행 출연금의 16.4%가 미국인의 세금에서 충당된다.

미국 특히 공화당 보수진영은 다자주의를 앞세우는 유엔이 2001년 9·11테러 이후 체제에선 미국의 안보를 지켜줄 수 없다는 목소리가 높다. 위클리 스탠더드 같은 보수잡지에는 ‘유엔을 개혁하든지, 문을 닫든지(Mend it, or end it)’라는 제목의 글이 줄을 잇고 있다.

또 민간 기업의 효율적 조직문화를 높게 평가하는 미국의 눈엔 국제기구의 느슨한 업무 태도도 미덥지 않다. 민주당 정권인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에도 미국은 “무능한 유엔 조직을 위해 22%나 되는 예산 분담금을 낼 수 없다”며 납부 거부를 한 적도 있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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