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에서 열린 월드 프리미어(첫 시사회)에서 만난 출연 배우의 소감은 정확히 반으로 나뉘었다. “(영화를 끝낸 것이) 후련하다”거나 “(흥행이 잘 될지) 긴장된다”거나. 촬영 기간을 합해 7년간 피터 파커, 즉 ‘스파이더맨’으로 살아온 토비 맥과이어(32)의 소감은 남달랐다.
“촬영 끝나자마자 옷 다 벗고 산꼭대기 올라가고 싶었어요. 어제 처음 완성본을 시사회장에서 봤는데 그동안 고생한 게 생각나 편안히 앉아 있을 수 없더군요. 그렇다고 부담이 있다는 건 아니에요. ‘해리포터’도, ‘반지의 제왕’도 3탄은 모두 성공했으니까.”
어느덧 30대 가장이 된 그는 ‘스파이더맨’과 함께 성장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신적으로는 6개월 정도 흐른 것 같다”며 웃는 그에게 오랜 시간 ‘스파이더맨’으로 살 수 있었던 원동력을 묻자 “계약서 때문이죠”라며 너스레를 떤다.
“처음에 3편까지 출연하겠다는 계약을 했어요.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 영화에 대한 샘 레이미 감독의 비전이 마음에 와 닿았어요. 그래서 그런지 저를 비롯한 여주인공 커스틴 던스트도 무리 없이 함께해 왔고 제작진과 팀워크도 좋았죠. 개인적으로는 어느덧 차기작을 제작사가 아닌 제가 스스로 고를 수 있는 여유와 힘이 생겼죠. 다 축복이에요.”
완결편인 ‘스파이더맨 3’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그가 이전의 빨강과 파랑이 섞인 옷을 벗고 검은 스파이더맨 복장을 하고 나타난다는 것이다. 알 수 없는 검은 유기체 ‘심비오트’에 감염된 피터는 검은 복장을 할 때마다 괴팍하게 변하는데 이는 피터의 자아 분열, 내면적 고뇌를 상징한다. ‘2 대 8’ 가르마를 하고 다 쓰러져가는 집에 사는 ‘순진남’에서 눈을 치켜뜨며 여자와 섹시댄스를 추는 그의 이중적 모습에 대해 레이미 감독은 “피터의 성장을 하나의 ‘여행’으로 묘사했다”며 “영웅이라도 모든 것을 얻을 수 없는 인간적 면모를 부각시켰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토비 맥과이어는 한숨을 쉬었다.
“마치 공부벌레 같은 모범생이 검은 옷 입고 ‘쿨’한 척하는 셈이죠. 실제로는 ‘오만방자’하지 않은데 그렇게 보이도록 연기하는 게 힘들었답니다. 섹시댄스도 안무가에게 배웠는데 어설프게 하기 위해서 스스로 막춤도 춰 보고…. 저도 여러 가지 면모를 갖고 있어 때로는 검은 옷을 입은 것처럼 행동하기도 해요.”
세 번째 스파이더맨이 미국인의 자존심을 거듭 세워 줄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새로운 괴물인 ‘샌드맨’(토머스 헤이든 처치), 피터의 직장 동료인 악당 ‘베놈’ 등 캐릭터와 스토리가 다채롭지만 139분의 러닝 타임 내내 긴장을 자아내진 않는다. 진부한 ‘할리우드 영웅관’도 변함없고 성조기가 펄럭거리는 가운데 스파이더맨이 사건 현장에 나타나는 모습도 여전하다. 위기 상황에 처한 이들의 박수를 받으면서 나타나 끊임없이 영웅임을 호소하는 스파이더맨이 반복되는 것을 보며 관객들은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까?
레이미 감독은 “미국도 피터처럼 결점이 많은 존재이고 성조기는 전성기 때의 미국을 상징하는 것일 뿐”이라며 “3편에 담고자 했던 것은 ‘슈퍼 히어로’의 용서와 부성애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스파이더맨 4’에 대해 묻자 토비는 “못 할 것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몇 편을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여기서 끝이 아니기를 바라는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레이미 감독과 커스틴 던스트의 대답도 한결같다. “모두 변치 않는다면, 10편도 문제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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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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