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한국인 조승희(23) 씨에 대해 이 학교 대변인인 래리 힌커 씨는 17일 이렇게 밝혔다. 생존자들은 ‘외톨이(loner)’ 조 씨가 미국 역대 최악의 총기난사사건을 “침착하게” 벌였다고 증언하고 있다.
버지니아공대 측과 경찰, 연방 조사당국은 17일 오전(현지 시간) 합동 공식 기자회견을 열고 “용의자는 한국 국적의 미국 영주권자인 조승희(Cho Seung Hui)”라고 공식 발표했다. 학교 측은 “4학년에 재학 중이던 조 씨는 교내 하퍼 홀 기숙사에서 거주해 왔다”며 “조 씨의 가방에서 3월에 9mm ‘글록’ 권총을 구매한 영수증이 발견됐다”고 덧붙였다.
외교부 관계자에 따르면 조 씨는 1984년 한국에서 출생해 1992년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 갔으며 페어팩스의 웨스트필드고교를 졸업했다. 조 씨는 미국에 거주할 수 있는 법적 권리가 있지만 국적은 한국인인 ‘외국인 거주자(resident alien)’, 즉 그린카드 소유자다.
유학생들의 증언에 따르면 조 씨는 폐쇄적인 생활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같은 학교의 한국인 학생들은 한국인 학부생이 100명가량 되고 종종 모이는데 조 씨는 그 모임에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유학생 정금일(23) 씨는 “조 씨와 기숙사의 같은 층에 사는 한국인 유학생조차 그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고 말하더라”고 전했다. AP통신 보도에 따르면 조 씨 가족이 사는 센터빌 타운하우스의 이웃인 압둘 샤샤 씨는 “조 씨가 시간이 나면 (혼자) 농구를 했으며 인사를 건네도 받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한편 조 씨의 정확한 범행 동기가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17일자 뉴욕타임스 인터넷판은 “용의자가 헤어진 여자 친구를 찾아 학교 기숙사를 뒤지다 총을 마구 쐈으며 자신도 끝내 자살했다”고 보도했다.
CNN은 “기숙사에서 희생된 이 여학생과 조 씨의 관계가 주목되고 있다”며 “이 관계는 이번 ‘학살(massacre)’의 동기를 밝히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버지니아 경찰서장도 17일 최승현 주미 한국대사관 워싱턴지역 영사와의 면담에서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사건의 동기는 치정이나 이성과 관련된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경찰 당국은 기숙사에서 일어났던 첫 총격사건과 관련해 조사하고 있는 ‘관심 인물’이 있다고 밝혀 이 인물과 조 씨의 관련성에 미국 언론들은 주목하고 있다. 미주 중앙일보에 따르면 버지니아공대 근처에 있는 래드퍼드대 재학생으로 알려진 이 학생은 기숙사 살인 사건이 발생한 후 460번 고속도로에서 검문 중이던 경찰에 연행됐다. 경찰은 기숙사에 거주하는 여학생의 남자친구로 알려진 이 인물이 “용의자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조 씨는 키 180cm가량의 비교적 건장한 체격이다. 목격자들은 “그는 스카우트와 같은 복장을 했으며 총격 당시 매우 침착했고, 훈련받은 듯 아주 능숙하게 총기를 다뤘다”고 증언했다. 이 때문에 조 씨가 평소 폭력적인 컴퓨터 게임을 즐겼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한편 시카고 트리뷴지는 조 씨의 기숙사 방에서 독설과 분노로 가득 찬 노트가 발견됐으며 그의 팔에 붉은색으로 새겨진 것과 같은 ‘이스마일 도끼(Ismail Ax)’라는 단어가 마지막으로 기록돼 있었다고 보도했다. 또 수사 소식통의 말을 빌려 최근 조 씨가 기숙사방에 불을 지르고 일부 여성을 스토킹하는 등 비정상적인 행동과 폭력 성향을 보였다고 전했다.
시카고 트리뷴은 조 씨의 노트에 ‘부잣집 아이들(rich kids)’, ‘방탕(debauchery)’, ‘기만적인 허풍쟁이들(deceitful charlatans)’을 강하게 비난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고 보도하며 “센터빌의 2층짜리 타운하우스에 사는 조 씨의 가족들은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그에겐 프린스턴대를 졸업한 여자 형제 한 명이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수사당국은 조 씨가 우울증으로 약을 복용한 적이 있다고 보고 있으며 현재 더 많은 증거를 찾기 위해 그의 컴퓨터를 조사 중이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이스마일’은 무슬림의 조상
‘이스마일 도끼(Ismail Ax)’는 사건을 푸는 열쇠가 될까.
용의자로 지목된 조승희 씨의 팔에는 붉은색 잉크로 ‘이스마일 도끼’라는 단어가 쓰여 있었다. 이 단어는 조 씨가 기숙사 방에 휘갈겨 쓴 노트에 마지막으로 쓰인 단어였다는 것이 18일 시카고 트리뷴지의 보도다.
‘이스마일 도끼’가 의미하는 바는 뚜렷하지 않다. 이스마일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에서 모두 ‘믿음의 조상’으로 여기는 아브라함의 아들이다.
성서에 따르면 아브라함은 아이를 갖지 못하던 본처 사라의 몸종 하갈에게서 첫째 아들을 얻었고 이름을 이스마일로 지었다.
아브라함의 대를 이은 이삭은 이스마일이 태어난 뒤 사라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다.
그 뒤 이삭은 유대인들, 이스마일은 무슬림의 조상이 됐다. 이스마일과 이삭은 갈등했고 이스마일은 이삭에게 밀려 사막으로 쫓겨났다. 무슬림은 이스마일이 정착한 곳이 오늘날의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라고 주장한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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