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는 18일 전화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에 유학을 가거나 환경이 급변한다고 해서 모두 이런 일을 저지르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이 단절된 아이라면 경우에 따라 극단적인 행동을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미국 사회에서는 총기를 실제 접할 수 있는데 영화에서 총기 난사 장면들이 쏟아지면 소통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는 그런 폭력적인 환경이 일종의 `트리거(촉발기제)'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건국대병원 신경정신과 하지현 교수는 "유학생들은 과거의 관계와 단절돼 낯선 환경에 던져지기 때문에 고립감이 심하다. 많은 유학생들이 영어 공부 등의 이유로 일부러 한국 사람을 피하고 현지인들과 어울리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집단을 찾아 사회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유학생 커뮤니티나 한인 교회 등 유대감과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집단을 찾아 적극적으로 관계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하 교수의 조언.
건국대 종합상담센터의 상담심리사 이모(30)씨는 "유학생은 자신의 문제를 혼자 해결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지만 문제를 관계 속에서 해결하지 않고 홀로 안고 있다 보면 조절이 되지 않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 특히 관계로부터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사람들은 자신의 애정을 오직 한 사람에게만 쏟다가 그 연결고리가 잘려버리면 엄청난 상실감에 빠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 사회학과 임현진 교수도 "용의자 부모가 세탁소를 한다고 들었는데 세탁소 영업을 하면 부부가 다 같이 늦게까지 일에 매달려 아이를 돌보고 대화하는 시간이 적었을 것이라고 본다. 미국이 다인종 사회라지만 폐쇄적인 부분도 있는데 그것을 뚫지 못해 좌절하는 교포가 많다"며 주위와의 관계 단절이 범행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어린 시절 미국에 간 조기 유학생들은 친구를 잘 사귀지 못해 큰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고 털어놓는다.
뉴욕에서 유학 중인 이가영(30.여)씨는 "중3 때 LA로 왔지만 너무 괴로워서 방학 때 한국에 왔다가 가출한 적도 있다"며 "용의자가 외톨이 생활을 했다는 기사를 읽고 그 사람도 나와 비슷한 심정을 느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서 이민을 와 적응하는 과정에서 겪은 혼란과 상처들이 그 사람의 성격 형성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쳤으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또 총기난사 용의자인 조승희 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배경에는 미국 사회의 백인우월주의나 인종차별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유범희 교수는 "버지니아주는 전통적으로 인종차별이 심하고 미국 내 백인 사회에서 `미국의 원조'라는 인식이 강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조씨가 백인우월주의의 사회적 분위기에 눌려 위축된 생활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임현진 교수도 "버지니아주는 한인들이 많이 사는 곳이지만 WASP(앵글로색슨계 백인)가 우세한 지역이기도 해 더욱 적응이 어려웠을 것이다"며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가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김동원기자 davi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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