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행 이틀전 조 씨, 뭔가 화난 표정"

  • 입력 2007년 4월 18일 16시 24분


"끔찍한 일을 저지른 당일 아침에는 지극히 평범하게 하루를 시작했다."

"사전에 미리 총기를 구입하고 관련법규도 지키며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했다."

버지니아 공대 참사 이틀째인 18일을 맞아 용의자인 조승희 씨의 최근 행적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뉴욕타임스와 LA타임스를 비롯한 미국 언론들은 조씨 주변 인물들의 말을 인용해 이를 자세히 보도했다.

▽사건 당일 아침에도 태연한 모습= 조씨는 매일 운동을 했으며 밤 9시면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는 편이었지만 사건 발발 전 몇 주 동안은 특히 일찍 일어나 새벽 5시에 일어나기도 했다고 한때 룸메이트였던 조지프 오스트 씨는 전했다.

사건 당일 아침에도 몇 시간 뒤 끔찍한 사건을 저지를 사람답지 않게 태연한 모습이었다고 기숙사 동료들은 증언했다.

회계학 전공의 캐런 그루얼 씨는 16일 오전 5시30분경 화장실에서 조씨와 우연히 마주쳤다. 조씨가 속옷에다 티셔츠 차림으로 들어와 아침 의식을 치르듯이 로션을 바르고 콘택트 렌즈를 낀 뒤 뭔지 모를 약을 먹었다는 것.

그루얼 씨는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다"며 "이런 행동을 저지를 수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조 씨와 하퍼홀 2121호를 같이 썼던 오스트 씨는 "조씨와는 거의 말을 하지 않고 지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몇 차례 말을 걸어봤지만 돌아오는 것은 한 두 마디 짧은 답변 뿐.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완전히 입을 닫아버렸다.

오스트 씨는 "조가 항상 컴퓨터 앞에 앉아 록, 팝에서 클래식까지 갖가지 음악을 즐겼다"며 "음악을 다운로드 받느라 많을 시간을 보냈다"고 회상했다. 또 책상에 앉아 초점 없이 어딘가를 응시하는 모습도 여러 차례 목격했다고 전했다.

그는 "조는 항상 조용하고 기묘한 사람이었다"며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위협적일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항상 찡그린 표정=조씨가 범행을 저지르기 이틀 전인 14일 버지니아공대 인근에서 조씨와 만났던 한국인 유학생 정모 씨는 "조씨가 시종 찡그린 얼굴이었고 뭔가 화가 난 표정이었다"고 증언했다.

정씨는 "14일 오후 골프 및 야구연습장에 갔다가 미국 남자 3명과 함께 놀러온 한 한국계 학생을 만난 적이 있는데 오늘(17일) TV를 보고 (총기를 난사한 사람이 조씨라는 사실을 알고) 무척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인 학생들은 눈을 마주치면 손짓을 하거나 웃어주는 데 그 사람은 애써 눈길을 피해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었다"며 "시종 찡그린 인상이었고 뭔가에 잔뜩 화난 표정이 역력했다"고 밝혔다.

▽총기 구입 법률 완벽히 지켜=조씨는 사건 발생 한 달 전에 이미 총기를 구입했고 구입과정에서도 버지니아 주의 총기 관련 법률을 완벽하게 지키는 등 치밀한 모습을 보여줬다고 LA타임스가 17일 보도했다.

현지 경찰에 따르면 조씨는 범행에 사용한 22일 22구경 권총을 2월 블랙스버그의 한 전당포에서 구입했다. 3월 19일에는 로아노크 무기상에서 9㎜ 권총을 추가로 구입했다.

총기를 한 정 구입한 뒤 30일 내에 다시 살 수 없다는 법을 이용한 것. 미국 주류담배화기 단속국(ATF)의 마이클 캠벨 대변인은 "내가 아는 한 조씨의 총기구매는 합법적이었고 판매자도 법적으로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했다"고 인정했다.

버지니아 주법에 따르면 무기 구매 전 최소 30일 전에 발행된 운전면허증, 면허증에 기재된 주소와 일치된 주소가 적힌 수표책, 구매자가 합법적으로 미국에 체류하고 있다는 이민자 카드를 보여줘야 한다. 또 총기 판매상은 버지니아 주 경찰에 연락해 전과가 없음을 확인한 후 최종적으로 무기를 팔 수 있다.

수상한 행동을 했다면 법에 따라 판매를 거부당할 수도 있었지만 조씨는 의심받을 만한 행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조씨에게 권총과 총알 두 박스를 팔았던 로아노크 무기상점의 주인은 "그는 단정한 차림이었고 제대로 된 신분증을 가지고 있었으며 필요한 서류도 모두 갖췄다"며 "전과 기록도 깨끗해 아주 평범한 거래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심각한 외톨이"=2005년 가을학기 때 조씨의 창작수업을 맡았던 루신다 로이 강사는 조씨가 수업시간에 보인 기묘한 행동과 글 때문에 늘 불안했다고 말했다.

그는 ABC방송과 가진 인터뷰에서 "조씨의 글에는 눈에 띄지는 않지만 수면 아래에 은밀한 위협이 도사리고 있었다"며 "지금껏 봐온 사람 중에서 가장 심각한 외톨이였다"고 말했다.

수업시간에도 늘 신경쓰이는 존재였다. 로이 강사는 조씨가 실내에서도 선글라스를 끼고 야구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질문을 하면 속삭이면서 답변을 하는데 수십초가 걸리기도 했고 수업시간에 휴대전화로 로이 강사의 사진을 찍기도 했다.

로이 강사는 대학 당국, 캠퍼스 경찰, 학교상담부서에 조씨의 위험성을 알렸으나 소용없었다. 조씨에게 상담을 받아보라고 충고했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

김재영기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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