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이 한국인 학생으로 밝혀지면서 충격에 휩싸였던 미국 교민사회가 차분하고 단합된 모습으로 위기 대처를 다짐하고 나섰다.
교민들은 한결같이 이번 사건을 한인사회가 미국 주류사회의 귀중한 일부로 융화되는 계기로 삼자고 주문했다.
워싱턴과 버지니아, 메릴랜드 등 미국 3개 지역 한인회와 교회협의회는 18일 비상대책위원회를 열고 추모 기금 조성, 미국 언론 홍보 대책, 조문단 방문을 비롯한 구체적 대처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김영근 워싱턴한인회 상임고문은 "희생자 유족과 슬픔을 나누기 위해 추모 기금을 조성하기로 의견을 모았다"며 구체적인 기금조성 계획을 곧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비상대책위 측은 또 미국 방송사에 범인의 국적을 가급적 밝히지 않도록 협조서신을 보내기로 했다.
뉴욕 교포사회 원로인 김영만 전 한국상공회의소(KOCHAM) 회장은 "이번 사태로 '안티 코리안' 정서가 파급될 우려가 있지만 한인사회가 이를 계기로 더욱 노력하면 미국 사회에서 '모범적인 이민자'라는 위상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식 주미 한국대사도 17일 워싱턴 교민사회 주최로 열린 추모예배에 참석해 "가슴에서 우러나는 조의를 희생자 가족과 미국 전체에 표하고 그들의 슬픔을 나누자"며 미국 사회 전체와 슬픔을 함께 나누고 자성하는 뜻에서 32일간 교대로 금식을 하자고 제안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프랭크 울프, 톰 데이비스 하원의원 등 미국 측 인사들은 이 대사의 말에 공감을 표시하며 '지역 주민들의 마음의 상처를 달랠 수 있는 진심 어린 말을 해준 데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뉴욕, 뉴저지 지역 한인단체들도 이날 저녁 특별대책회의를 갖고 희생자 추도집회 추진위원회를 결성한 것을 비롯해 미국 전역으로 추도집회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지역의 시민단체들은 이번 사건으로 인해 한인 사회가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로스앤젤레스 도시정책 라운드테이블(LAUPR)'과 '로스앤젤레스 시민권협회(LACRA)'는 코리아타운 내 총영사관을 방문해 "모든 미국인은 이번 사건을 한 외톨이 청년의 행동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재미 한인 전체의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는 성명을 전달했다.
로키 델가디요 로스앤젤레스 검사장도 총영사관을 방문해 "이번 사태로 한인에 대한 공격이나 차별이 일어나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정부는 이번 사건이 한미관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미국에 위로전문을 보내는 한편 미 행정부와 다각적인 접촉을 벌이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18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보낸 위로전문에서 "희생자와 부상자, 그 가족, 그리고 미국 국민에게 위로와 애도의 뜻을 표한다"며 "부시 대통령의 지도력 아래 사건이 조속히 수습돼 충격과 슬픔에서 벗어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미국의 전 공관에 교민 안전에 만전을 기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며 "이번 사건의 여파로 한국 교민이 미국에서 피해를 입거나 차별을 당한 사례는 입수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미 국토안보부와 국무부는 이날 한국 외교통상부에 "미국 정부는 이번 사건이 한미관계와는 무관한 사안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