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공대 총격 사건의 범인이 한국계 1.5세인 조승희씨라는 사실이 알려진 뒤 국내 일각에서는 부모의 양육 책임을 묻는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했지만 이 사건을 취재하는 외신 기자들은 조씨 부모도 희생자라는 시각을 보여 대조를 이뤘다.
외신 기자들은 조씨 부모가 10여년 전에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열심히 일하며 자녀를 뒷바라지해왔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그들(조씨 부모)도 사랑하는 자식을 잃은 희생자"라며 오히려 조씨 부모의 아픈 마음을 보듬었다.
이번 사건이후 프레스센터 역할을 하고 있는 버지니아공대 동문회관에서 만난 미국 방송사의 한 기자는 "누구도 조씨 부모를 비난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미국에 와서 성실히 일했고, 자녀들을 잘 키워 좋은 대학에 진학시켰다. 조씨의 범행에 그의 부모를 연관시키는 것은 잘못이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그는 "조씨 부모도 이번 사태로 인해 심적으로 큰 부담을 지고 있을 게 틀림없다. 또 어찌됐든 자식을 잃게 돼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며 조씨 부모의 심경까지 헤아려보려 애썼다.
미국내 신문사에서 일하는 다른 사진기자도 "조씨는 이미 성인이다. 그의 범행 때문에 부모가 공동으로 책임을 질 이유가 없다. `자식이 잘못하면 부모도 죄인'이라는 시각은 서양인들의 것이 아니다"며 조씨의 범행과 부모의 책임을 분리했다.
이들 2명의 미국인 기자들과 달리 이름을 공개한 독일의 뉴스통신사 `스플래시'의 그라엠 매시 기자도 조씨 범행에 관련해 "조씨 부모를 탓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그는 "그들(조씨 부모)은 자녀에게 좋은 교육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미국으로 왔고, 또 열심히 일하면서 자녀를 키웠다"며 "조씨에게는 범죄 전과 기록이 없었고 또한 그의 정신상태를 제대로 몰랐을 것이다"며 조씨 부모를 두둔했다.
이어서 그는 "설령 부모가 조씨의 정신질환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성인인 아들을 통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고 덧붙였다.
조씨 부모는 1992년 미국으로 이민온 후 세탁소와 고교 구내식당 등에서 일하면서 조씨 누나를 명문 프린스턴대에, 조씨를 버지니아공대 영문과에 각각 진학시켰다.
이들은 아들이 총격 살인사건을 저지른 사실을 접한 뒤 버지니아 센터빌의 집을 비우고 떠나 한때 자살설과 잠적설에 휩싸이기도 했으나 현재 미국 연방수사국에 의해 보호를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동원기자 daviskim@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