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건국 이후 처음으로 진행된 전직 대통령 장례식에는 10만 여명(경찰 추산)의 러시아 국민들이 찾아와 고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조문 행렬은 전날 밤부터 이날 낮12시까지 끊이지 않았다. 러시아 테러 및 시위진압 경찰인 오몬(OMON)은 이날 조문 행렬 인파 속에 배치돼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옐친 전 대통령과 같은 시기에 재직했던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레흐 바웬사 전 폴란드 대통령도 장례식에 참석했다.
세계 각국은 국가 원수가 직접 장례식에 참석하거나 조문 사절을 보냈다. 장례식장을 직접 찾은 정상은 호르스트 쾰러 독일대통령,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 알렉산드르 루카센코 벨로루시 대통령 등이다. 한국은 한명숙 전 총리를 조문 사절로 보냈다.
국가 애도의 날로 지정된 이날 크렘린과 전 세계 러시아 대사관에는 조기가 게양됐다. 크렘린과 러시아 두마 의회는 모든 일정을 취소했으며 방송사들은 광고를 일시 중단하고 다큐멘터리나 옐친 대통령 재직 당시 유행했던 영화를 상영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장례식에서 "1999년 퇴임 당시 고인이 남긴 '러시아를 지켜라'라는 말은 지금 러시아의 도덕적 정치적 지향점이 됐다"고 말했다.
장례식에 앞서 이날 오전 11시 반까지는 스몰렌스크, 칼린그라드에서 온 러시아정교 주교들이 영결 미사를 집전했다. 정교회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은 전직 대통령 관 앞에서 성경을 낭독했다. 미사와 장례식이 열린 구세주 성당은 소련 시절에는 폐쇄됐으나 옐친 전 대통령 집권 이후 복구된 건물로 크렘린에서 200m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관이 놓인 제단 앞에는 부활을 상징하는 성모상(아이콘)이 설치됐고 크렘린궁 근위부대 소속 병사들이 자리를 지켰다.
장례식이 끝나자 영구차는 성당에서 서쪽으로 2km 떨어진 노보데비치 수도원 옆 공동묘지로 향했다. 하관식은 옐친 전 대통령의 부인 나이나 여사와 딸 두 명 등 가족들만 참석했다.
고인은 한때 그의 정치 라이벌이던 알렉산드르 레베드 전 국가안보회의 의장의 묘지 옆에 묻혔다. 레베드 전 의장은 1996년 러시아 대선 당시 대권 후보로 나섰다가 선거기간 중 안보회의 의장 자리를 제의받고 대권 경쟁에서 물러났다. 또 백혈병으로 숨졌던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 부인 라이사 여사도 고인의 묘지와 가까운 곳에 묻힌 것으로 알려졌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 세계 각국 정상을 크렘린 대궁전으로 초청해 별도의 조문 행사를 열었다. 장례식이 끝난 뒤 조문객을 별도로 초청하는 것은 러시아 전통 의식이다.
모스크바=정위용특파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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