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핏의 독특한 후계자 선발방식

  • 입력 2007년 4월 29일 17시 16분


미국 네브래스카 주 오마하에 있는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의 집무실 책상 위에는 '너무 어려운(TOO HARD)'이라고 이름 붙여진 박스 하나가 놓여있다. 이 박스는 버핏 회장의 후계자 지원 서류를 모아놓는 곳. '비효율적'이라는 일부 비난에도 불구하고 버핏 회장은 자신의 투자 스타일만큼이나 독창적인 후계자 선발 방식을 밀고 나가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8일 보도했다.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버핏 회장은 지난달 초 자신의 뒤를 이어 버크셔 해서웨이의 1300억 달러 자산을 굴릴 최고투자책임자(CIO)를 구한다는 공고를 냈다. 은밀하게 월가 최고의 투자매니저를 영입할 것이라는 일반의 관측과는 달리 공개 모집에 나선 것. 모집을 마감한 4월 27일 세계 각국에서 600여 통의 지원 서류가 밀려들었다. 버핏 회장은 학력, 경력에서 제한조건을 달지 않았다.

지원자들 중에는 투자회사 펀드매니저도 있지만 취미로 투자를 하는 교사, 엔지니어, 변호사 등도 많이 포함돼있다. 협상 능력이 좋다는 이유로 자신의 4살짜리 아들을 추천한 사람도 있다. 지원자들의 배경이 너무 다양한 탓에 일부에서는 "버핏 회장의 후계자 선발 과정이 '아메리칸 아이돌(어중이떠중이 참가자들이 실력을 겨루는 TV 장기자랑 프로그램)'을 닮아간다"는 비난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월가의 유명 투자매니저들은 이번 공개 모집에 지원 서류를 내지 않았다.

버핏 회장은 WSJ와의 인터뷰에서 공개 모집 방식을 택한 것에 대해 "금융회사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전문가라고 해서 투자 위험 요소를 발견하는 능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짧은 시간 안에 상대방의 능력을 파악하는 기술이 뛰어난 것으로 정평이 난 버핏 회장은 "간단한 인터뷰를 통해 후계자 감을 밝혀낼 수 있다"고 자신감을 피력했다. 통찰력, 판단력, 감수성이라는 간단한 3대 조건을 내건 버핏 회장은 1차 선발을 통해 20여명의 후보를 추려낸 뒤 올 연말경 1~2명의 CIO를 선발할 계획이다.

버핏 회장이 강조하는 점은 후계자 선발 과정이 '멘토쉽(조언) 프로그램'은 아니라는 것. 즉 자신으로부터 투자 철학이나 전략을 배우려고 지원한 사람은 탈락 1순위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그는 "뭔가 배우고 싶다면 학교로 가라"면서 "나는 이미 투자에 대해 훤히 알고 있는 사람을 원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1차 선발자 20명을 대상으로 지난 10년간 투자 실적을 꼼꼼히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버핏 회장은 "희망 봉급 수준을 밝힌 지원자가 한 명도 없는데 나는 노예노동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면서 경영성과에 따라 그에 합당한 보수가 주어질 것임을 시사했다.

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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