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가 만연한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의 얘기가 아니다. 법을 잘 지키기로 유명한 독일에서 대표적인 기업들이 최근까지 저지른 부패상이다.
영국 일간 더 타임스는 2일 “독일 기업들이 잇따른 스캔들로 좌초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엄격한 기업 윤리를 강조하는 영국과 미국에선 상상하기 힘든 부패상이라면서 독일 기업들의 부패상을 상세히 파헤치고 원인을 분석했다.
이 신문은 독일 기업들 사이에서 뇌물은 공공연한 ‘비즈니스 수단’으로 통하고 최근 부패 스캔들이 잇따라 터지면서 관련 법규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독일 사법 당국은 최근 지멘스에 대해 두 가지 혐의를 두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하나는 4억2600만 유로를 조성해 뇌물로 사용했다는 점. 또 하나는 자사 근로자들을 친사용자 성향으로 만들기 위해 현금 뇌물을 공여했다는 혐의다. 하인리히 폰 피러 지멘스 감독이사회 의장은 책임을 지고 최근 의장직에서 물러났다.
BMW의 한 간부는 부품 업체들로부터 100만 유로를 받은 혐의로 지난해 말 유죄를 선고받았다. 필립스 독일 지사는 자사 제품을 눈에 띄게 전시해 달라며 유통 업체들에 뇌물을 준 사실이 들통 났다.
국제투명성기구(TI) 독일 지부의 관계자는 “지난 10년간 독일에서는 이런 부패 스캔들이 크게 증가했지만 독일에선 아직도 감시 체계가 약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터진 폴크스바겐의 부패 스캔들은 독일 재계의 뿌리 깊은 부패상을 총망라한 것으로 꼽힌다.
이 회사는 노조 간부들에게 수백만 유로의 뇌물을 준 것으로 드러났다. 또 노조 간부들은 회사로부터 호화 해외여행을 제공받았고 여행에는 매춘부까지 동원된 것으로 확인됐다.
한 임원은 회사돈으로 비아그라를 구입한 사실이 발각됐으며 노조 간부들이 매춘 여성과 비밀스럽게 만날 수 있도록 아파트까지 구입해 제공한 것으로 밝혀졌다.
더 타임스는 “독일에서 사업상 목적의 뇌물 공여는 최근까지 불법이 아니었다”고 원인을 지적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출 중심으로 경제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 관행이 오랫동안 지속됐다는 것.
최근 한 조사에서 독일 기업의 3분의 1이 ‘경쟁 회사의 뇌물 공여에 밀려 계약을 잃었다’고 대답한 데서도 독일 경영진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에른스트 앤드 영’은 독일에서 이런 식으로 낭비되는 비용이 연 83억 유로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은 최근 독일의 이런 부패상이 상당 부분 ‘공동결정(미트베스티뭉·mitbestimmung)’ 법 때문에 빚어졌다고 지적했다.
‘근로자의 경영 참가권’을 의미하는 이 법에 따라 독일의 2000인 이상 사업장은 감독이사회의 절반을 근로자에게 내줘야 한다. 독일 기업의 경영진은 근로자의 지지를 받기 위해 현금을 포함한 각종 뇌물을 동원했다는 것. 디 벨트지는 최근 사설에서 이 법을 ‘뇌물 면허’라고 꼬집었다.
파리=금동근 특파원 gold@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