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선거는 오랜만에 프랑스 전역을 들썩이게 했다. 1차 투표 때의 투표율은 85%에 이르렀다. 프랑스의 민주주의가 살아 있음을 보여 주는 수치다.
12명의 후보는 잘 조직된 극우파로부터 중도파를 거쳐 극좌파에 이르기까지 이념의 스펙트럼이 다양했다. 이념이 다른 만큼 아이디어와 약속도 다양했다. 결선투표에 오른 두 명도 각각 좌·우파를 대표해 상반된 공약을 쏟아 낸다.
그러나 유권자들이 잊어선 안 되는 점이 있다. 후보들은 선거에서 이기는 것만을 목적으로 약속을 쏟아 낸다는 점이다. 현실적으로 그들을 비난하기는 어렵다. 후보들이 진실만을 얘기한다면 선거에서 질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도 알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려는 정치인들의 행동은 민주주의가 시작된 시점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고대 로마제국의 지도층은 ‘빵과 유희’를 요구하는 대중을 만족시키기 위해 최대한의 오락거리를 제공했다.
4세기에 민주주의의 기본 개념을 만든 플라톤은 “능력 있는 지도자란 자신의 행동이 어떻게 끝날지 아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지도자는 예측된 결말을 놓고 두가지 방법으로 사람들을 통치한다고 그는 분류했다. 하나는 사람들의 이익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 선에서 정직하게 정치를 하는 것, 또 다른 하나는 대중에게 아첨하거나 우민 정책으로 대중을 이끄는 것이다.
후자에 해당하는 통치 스타일은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바 없다. 선동 정치가, 아첨하는 정치꾼, 여론을 조작하는 정치인이 여전히 존재한다. 탓만 할 일은 아니다. 정치는 지식처럼 정답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최상의 정치 체제를 찾는 대신 ‘가능한 선에서 최선의’ 정치 시스템을 추구했다. 통치자들에게는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자신들에게도 좋다는 사실을 주지시켰다. 통치자들은 먼저 예의를 갖추고, 미덕을 보여 주고, 법을 가장 먼저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대 정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16세기의 마키아벨리는 이상적인 정부에 도달하는 길을 연구했다. 그는 ‘국가의 존재 이유는 도덕적 가치에 우선한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이런 생각을 가진 지도자들이 적지 않다. 국가의 안전을 위해서라는 명분 하에 감시와 감청, 불법 억류 같은 비도덕적 도구를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
그러나 민주주의에는 이를 조절할 수 있는 특별한 요소가 있다. 바로 표현의 자유다. 이것은 민주주의의 으뜸가는 원칙이다. 표현의 자유는 현대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더욱 강력해지고 있다.
대선 후보들은, 어느 정도는 선거에 이기기 위해 최대치의 공약을 내걸어야 하는 시스템의 포로라고 할 수 있다.
명문화된 규칙이 없는 선거에서 사람들은 먼저 후보의 행동거지를 보고 가치관과 세계관을 따진다. 그 뒤에 그들이 내거는 공약을 들여다본다. 어느 후보가 당선되면 어떤 미래가 올 것이라는 판단은 유권자들의 몫이다.
따라서 선거의 규칙을 만드는 것도, 사회의 성숙도를 보여 주는 것도 유권자들이 할 일이다. 지켜지지 않는 공약을 남발하는 시스템과 지킬 수 있는 공약만 내세우는 시스템 중 어떤 시스템이 정착되는가도 유권자들에게 달려 있다. 게다가 오늘날의 유권자들은 더 강력해진 ‘표현의 자유’를 갖고 있지 않는가.
시스템을 발전시키고 나아가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것은 선거의 주체인 유권자들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제라르 뱅데 에뒤프랑스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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