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PS란 무엇인가.
“TPS를 만든 오노 다이치(大野耐一·작고) 도요타 전 부사장의 이야기부터 하자. 오노 전 부사장은 예고 없이 공장에 나타나 현장을 묵묵히 응시하곤 했다. 현장 책임자가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물으면 항상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공포의 분필’을 꺼내 책임자의 둘레에 조그맣게 원을 그려 놓고 자리를 떴다. 문제점을 찾아낼 때까지 원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뜻이었다. 오노 부사장이 돌아왔을 때도 현장 책임자가 문제점을 찾아내지 못했으면 원을 또 하나 그리고 다시 사라졌다. TPS란 스스로 문제점을 찾아내고 끊임없이 개선하는 것이다. 책에 씌어 있는 TPS는 TPS가 아니다.”
―TPS는 자동차산업 이외의 부문에도 유효하다고 보는가.
“그렇다. 2005년 개항한 일본의 주부(中部)국제공항이 좋은 예다. 2000년 8월 착공할 당시 예상 공사비는 7680억 엔이었다. 도요타 출신의 히라노 유키히사(平野幸久) 전 사장은 이보다 1200억 엔이나 적은 금액으로 공항을 완공했다. 도요타에서 낭비 제거와 비용 절감이 몸에 밴 히라노 전 사장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관료들 사이에서는 ‘예산은 쓰라고 있는 것’이라는 푸념이 나왔다.”
―한국 기업이 도요타에 비해 결정적으로 부족한 점은 무엇인가.
“도요타 임원들은 틈만 나면 현장으로 달려간다. 도요타의 조 후지오(張富士夫) 회장은 오노 전 부사장 밑에서 7년 동안 수련했다. 와타나베 가쓰아키(渡邊捷昭) 사장은 ‘관리통’으로 알려져 있지만 도요타(豊田) 시 모토마치공장에서 3년간 공장장을 했다. 도요타의 경영진은 보고서만 읽어도 현장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금방 안다. 한국에 현장을 아는 최고경영자(CEO)가 얼마나 있는가. 메이커에게는 물건을 만드는 현장이 가장 소중하다.”
―한국의 생산 현장을 많이 둘러본 것으로 알고 있다. 무엇이 문제라고 보는가.
“설비가 대표적이다.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는 핵심 설비는 기껏해야 20%가량이다. 나머지는 물류나 검사처럼 부가가치 창출과 전혀 관계가 없는 설비다. 한국 기업은 여기에 엄청난 돈을 쓰고 있다. 도요타는 처음 설계단계에서부터 제품 모델이 바뀌어도 교체 설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모든 관계자가 모여 지혜를 짜낸다. 반면 한국 기업은 모델이 바뀌면 설비도 모두 바꾼다. 공정을 바꿔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곳에 고가의 최첨단 로봇을 들여 놓는다. 그나마 직접 만든 설비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 일본 기업이 만든 설비다. 휴대전화 설비도 일본제 일색이다. 장비업체들은 당연히 새롭고 비싼 설비를 쓰도록 권한다. 자신이 직접 설비를 만들지 않으면 최소한 ‘이런 비싼 설비를 누가 만들었나, 바보 아닌가’라고 장비업체들에 지적할 수 있는 내부 인재가 필요하다. 한국 제조업체들은 자신의 혼을 밖에다 내주고 있다.”
―한국 기업 간부들에게 TPS를 가르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오노 전 부사장이 1990년경 한국에서 TPS를 강의한 적이 있다. 한국 기업에서 연수 요청이 쇄도하자 오노 전 부사장이 내게 연수 지도를 요청했다. 나는 오노 전 부사장에게 눈물이 날 정도로 엄하게 가르침을 받았다. 사제 간이나 다름없다.”
―약간 다른 이야기지만, 오쿠다 히로시(奧田碩) 전 도요타자동차 회장의 경우 정치인이나 관료들을 향해 직설적인 비판을 할 때가 많았다. 한국에서는 기업인이 드러내 놓고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인데….
“기업은 납세자다. 자기가 낸 세금이 효율적으로 사용되도록 목소리를 낼 권리가 있다고 본다.”
인터뷰가 끝난 뒤 그가 손수 운전하는 렉서스 승용차를 타고 점심식사 장소로 향하는 동안 고희를 지난 것으로 믿어지지 않는 나이를 화제로 올렸다.
호시노 회장은 “집사람이 ‘70을 넘겼으니 골프나 하면서 쉬라’고 잔소리를 자주 했는데 훈장 수여식에 다녀오더니 ‘좀 더 힘내라’는 쪽으로 태도가 바뀌었다”면서 “한국 기업들이 스스로의 생산방식을 만들어 내는 데 도움이 된다면 나는 언제까지든 필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호시노 회장은 강원 춘천시와 일본 가카미가하라 시의 자매도시 결연을 지원하고 인간문화재 이은관 씨를 초청해 공연하는 등 한일 간의 사회·문화 교류에도 많은 기여를 해 왔다.
가카미가하라=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 호시노 데쓰오 회장은
△1936년 출생 △1959년 릿쿄(立敎)대 경영학부 졸업 △1965년 기후차체공업 입사 △1989년 기후차체공업 상무, 전무를 거쳐 사장 취임
△1999년 가카미가하라 시 한일친선협회 부회장 △2001년 기후차체공업 회장 △2004년 가카미가하라 시 상공회의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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