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선택한 발표 장소는 젊은 시절 기타를 연주하곤 했던 지역구의 노동당 클럽이었다. 열띤 환호 속에 ‘팝스타’처럼 물러나야 한다는 주변의 조언에 따른 것이다.
지역구민의 열띤 박수 속에 자신과 노동당의 치적을 열거한 그는 연설 막바지에 이라크전쟁 책임론과 관련해 “내가 틀렸을지 모르지만 나로서는 옳다고 생각한 것을 했다”고 말했다.
블레어 총리로선 그만큼 자신이 10년 동안 이룬 업적이 일부 과오로 잊히지 않기를 바랐을 것이다.
이어 1997, 2001, 2005년 총선에서 세 차례 연속 승리하며 노동당 출신 최장수 총리의 영예를 안았다. 총리로선 1812년 로드 리버풀(42세 취임) 이래 최연소다.
그는 국유화와 소득분배로 상징되는 전통 좌파 공약을 과감히 버리고 시장경제 논리를 적극 포용하는 중도 좌파 ‘제3의 길’을 내세워 18년 보수당 집권에 종지부를 찍었다. ‘제3의 길’이 불평등을 심화시키기도 했지만 노쇠한 영국에 활기를 불어넣은 것만은 분명하다.
그의 재임 기간 중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BOE)은 독립권을 얻었고 최저 임금제가 도입됐다. 북아일랜드 분쟁 종식을 위한 노력도 결실을 맺어 8일 북아일랜드에는 신구교도가 권력을 공유하는 자치정부가 출범했다.
그러나 이라크전쟁 동참은 블레어 총리의 10년에 큰 오점을 남겼다. 지나친 친미 외교정책으로 그는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푸들’이라는 오명까지 얻었다. 게다가 정치자금 스캔들로 현직 총리로선 사상 처음으로 범죄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처음 ‘아기사슴 밤비(Bambi)’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그는 어느덧 ‘블라이어(Bliar·거짓말쟁이 블레어)’라는 별명을 얻었다.
퇴임 후에도 그는 정치인으로 남아 정력적 활동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측근들은 “블레어 총리가 퇴임 후에도 다른 큰일이 맡겨지지 않는 한 의원직을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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