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선 구조조정에 내몰리고 가정에선 자녀 주부 애완동물에 이어 ‘서열 4위’로 대접받는 일본 샐러리맨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심정인 듯하다.
일본 다이이치생명보험은 직장인들에게서 공모한 창작 ‘센류(川柳)’ 중 입선작에 대해 인기투표(7만3000명 참여)를 실시한 결과를 14일 발표했다.
센류란 하이쿠(俳句)처럼 5·7·5의 3구 17자로 이뤄지며 주로 자연과 서정을 노래하는 하이쿠와 달리 인간사와 세태를 풍자하는 짧은 시를 말한다.
1∼10위작은 내용상 크게 3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째는 직장과 가정에 치여 고립된 가장을 묘사한 유형. 2위에 오른 ‘좌변기’ 센류와 ‘밥 있어?/하면 있지…왜/아뇨 괜찮아요’(8위)가 여기에 속한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과 TV 드라마에 빠져 남편에게는 관심도 보이지 않는 아내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짧은 운율에 담았다.
‘개는 좋겠다/절벽에서도/구조되고’(3위)는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벼랑 끝’ 샐러리맨의 자기비하 심리를 표현했다. 이 센류의 뜻을 이해하려면 간단한 일본 시사 상식이 필요하다.
지난해 11월 17일 도쿠시마(德島) 현 도쿠시마 시에서 있었던 일. 산기슭 붕괴를 방지하기 위해 설치된 높이 100m가량의 옹벽 윗부분에 개 한 마리가 오도 가도 못한 채 위험에 빠져 있는 모습이 발견됐다. 시 소방당국은 소방대원 20여 명을 출동시키고 벼랑 아래에 안전그물을 치며 열심히 구조작업을 벌인 끝에 이틀 만에 개를 구조했다.
이 구조 모습이 TV 전파를 타고 전국에 생중계된 뒤 ‘절벽견(犬)’은 하루아침에 유명 스타가 됐다.
두 번째는 급속히 쇠퇴하는 두뇌기능, 특히 갈수록 심해지는 건망증을 읊은 유형.
‘뇌 연령/연금받기에/이미 충분’(1위), ‘그거 어딨더라/거시기를 머시기하는/그거야’(4위), ‘잊지 않으려고/적어둔 메모지를/어디 뒀더라’(6위) 등이다.
세 번째는 점점 두꺼워지는 복부지방과 신체능력 저하를 읊은 유형이다.
‘많이도 모았네/돈이 아니라/체지방’(10위)이 대표적이다.
최근 일본에서 선풍적인 붐을 일으킨 ‘뇌 훈련’을 소재로 한 ‘뇌 훈련/하기 전에/지방 훈련’(9위)과, 지난해 일본의 최고 유행어를 화두로 삼은 ‘이나 바우어/자세 잡다가/허리통증’(7위)도 이 유형에 속한다.
이나 바우어는 피겨스케이팅에서 두 발끝을 180도로 벌리고 옆으로 미끄러지는 기술. 지난해 토리노올림픽 여자 피겨 싱글에서 아라카와 시즈카(荒川靜香) 선수가 허리를 크게 뒤로 젖히는 이나 바우어를 멋지게 연기해 금메달을 받았다.
그렇다면 이리 차이고 저리 차이는 이들 샐러리맨에게 삶의 활기를 되찾아 주는 것은 무엇일까.
‘고마워/그 한마디가/윤활유.’
5위였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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