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보다 기자들과 ‘가까우면서도 먼’ 관계에 있는 이들의 입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은 영화 덕분이었다. 21일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마이클 윈터보텀 감독의 영화 ‘위대한 용기(A Mighty Heart)’ 기자간담회장에 제작자와 주연배우로 나란히 등장한 브래드 피트와 앤젤리나 졸리의 이야기다.
비경쟁 부문에 초청된 ‘위대한 용기’는 2002년 파키스탄 테러단체에 납치돼 비디오카메라 앞에서 참수됐던 월스트리트저널 기자 대니얼 펄의 사건을 기록한 그의 아내 메리언 펄의 동명의 책을 바탕으로 한 작품. 피트는 이 책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아 영화판권을 사들였고, 마침 사건 당시 메리언처럼 임신 6개월이던 졸리가 메리언 역을 맡았다.
졸리는 “임신 6개월 상태에서 남편의 생사를 걱정하는 일은 나로선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며 “그런 상황에서도 10명의 파키스탄인이 똑같은 테러에 희생됐음을 상기시키며 파키스탄인을 미워하지 않는다고 말한 메리언이 매우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피트는 “메리언이 유복자가 된 아들 애덤을 위해 책을 썼듯이 나도 아버지가 된 뒤 우리 아이들을 위해 세상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는 책임감에 영화화를 결심했다”며 “증오를 증오로 갚지 않고 인간으로서 위엄을 잃지 않은 메리언의 자세는 우리에게 큰 모범이 됐다”고 말했다.
쿠바계 프랑스인인 메리언도 기자였는데 남편의 납치사건이 보도된 뒤 취재 공세에 시달린다. 남편의 참수 장면을 담은 동영상을 끝까지 보지 않았던 메리언은 영화 속에서 파키스탄을 떠나며 가진 인터뷰 말미에 이를 확인하려는 CNN 기자의 질문에 분노를 터뜨린다.
졸리는 이 장면과 관련해 기자들의 취재 공세에 시달리는 자신의 처지와 비교하는 질문을 받고 “유명세 때문에 파파라치에게 시달리는 것과 그처럼 절망적 상황에서 사생활이 침해받는 것을 같은 선상에서 볼 수는 없다”고 단호히 선을 그었다. 졸리는 “오히려 이 영화를 찍으면서 대니얼과 메리언처럼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자신의 직업의식에 투철한 기자들을 새삼 존경하게 됐다”고 말했다.
졸리의 말에 감동해서일까. 한 미국 기자는 이 자리에 참석한 메리언에게 “그날 CNN 기자의 질문에 대해 모든 언론인을 대신해 사과한다”고 말했고 메리언은 “사과를 받아들인다”고 화답했다.
칸=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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