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지방선거 좌우하는 영국계 이주민

  • 입력 2007년 5월 23일 18시 04분


스페인의 코스타델솔(태양의 해변)의 작은 도시 산 풀젠시오.

날씨 좋기로 유명한 이 도시가 27일 실시되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반으로 쪼개졌다. 해변에서 조금 떨어진 시내와, 해변을 따라 형성된 새로운 주거지로 갈라진 것. 단순한 지역 대결 구도가 아니다. 시내에 사는 스페인 원주민과 해변을 차지한 영국계 이주민의 '민족간 대결' 성격이 강하다.

영국 언론들도 스페인 지방 선거에 전에 없던 관심을 쏟고 있다. 일간 가디언은 23일 중상 비방에 법정 다툼까지 벌어지고 있는 산 풀젠시오의 과열된 선거전을 소개했다. 신문에 따르면 영국계 주민들은 "스페인 경찰들은 늘 커피를 마시며 빈둥거리기만 한다"고 비난한다. 스페인계 주민들은 "영국인 부모들은 왜 스페인어 배울 생각은 않고 학교에서도 영어로 가르치기를 원하는가"라며 꼬집는다.

이 도시는 좋은 날씨를 찾아 스페인으로 이주하는 영국인이 늘면서 영국계 주민의 입김이 커지는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산 풀젠시오의 운명이 사상 처음으로 외국인의 손에 놓여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더 타임스가 소개한 칼비아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곳에선 크리켓 경기장과 볼링장이 주요 선거 쟁점으로 떠올랐다. 4년 전 선거 때 민중당에 패배한 사회당은 영국계 주민 표를 끌어들이기 위해 '영국인들이 원하는 대로 크리켓 경기장, 볼링장을 현 상태로 유지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현 시장은 이 경기장들을 밀고 쇼핑센터와 아파트를 지을 계획이다.

스페인에 거주하는 영국인은 10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투표권을 가진 주민은 27만 명. 유럽연합(EU) 출범 이후 회원국 간 이주가 자유로워지면서 생기는 여러 가지 변화 가운데 스페인의 코스타델 솔은 정치 판도까지 이주민에 의해 좌우되는 가장 역동적인 변화를 겪고 있는 중이다.

파리=금동근특파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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