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군국주의 정부 기자클럽 줄여 통제에 악용”

  • 입력 2007년 5월 2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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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일본기자클럽에서 만난 일본 언론학계의 원로 하루하라 아키히코 조치대 명예교수. 그는 “기자회견의 주도권을 위정자가 가지면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만 골라서 할 수 있다”며 한국 정부의 기자실 통폐합 조치에 우려를 나타냈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28일 일본기자클럽에서 만난 일본 언론학계의 원로 하루하라 아키히코 조치대 명예교수. 그는 “기자회견의 주도권을 위정자가 가지면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만 골라서 할 수 있다”며 한국 정부의 기자실 통폐합 조치에 우려를 나타냈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日 언론학계 원로 하루하라 아키히코 조치大 명예교수 인터뷰

“진정한 취재 지원 시스템 선진화란 국민에게 전달하는 정보의 양과 통로를 확대하는 것입니다. 국민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양과 통로를 좁히는 것은 선진화의 역행입니다.”

1989년부터 2년 동안 일본신문학회 회장을 지낸 일본 언론학계 원로 하루하라 아키히코(春原昭彦·80) 조치(上智)대 명예교수는 “민주주의 아래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정책을 널리 알릴 책임과 의무가 있다”면서 “보도기관에 가능한 한 폭넓은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8일 도쿄(東京) 시내에 있는 일본기자클럽에서 하루하라 명예교수를 만나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이 “가장 후진적인 시스템”이라고 지목한 일본의 기자클럽, 기자실 제도와 한국의 기자실 통폐합에 관한 의견을 들어 봤다.

―일본의 취재 시스템이 가장 후진적이라는 의견에 동의하는가.

하루하라 아키히코 명예교수는
△1927년 도쿄 출생 △조치(上智)대 신문학과졸업 △일본신문협회 조사과장, 외국조사과장, 조사위원 △일본기자클럽 사무국장 대리 △조치대 신문학과 교수 △일본선거학회 이사 △일본신문학회 회장 △전공: 저널리즘 역사, 신문학 △저서: ‘일본 신문 통사’ ‘일본프레스센터 10년사’ ‘일본기자클럽 10년사’

“생각하기 어려운 발언이다. 한 나라의 취재 시스템은 그 나라의 전통과 문화에 따라 다르다. 일본의 취재 시스템이 구미보다 선진적인 부분도 많다.”

―일본에서 기자클럽, 기자실 제도가 생겨난 배경은 무엇인가.

“일본에서 기자클럽이 발생한 것은 제국의회가 만들어진 1890년경이다. 당시에는 관존민비(官尊民卑) 사상이 강해 기자가 관료를 상대로 직접 질문을 하기는커녕 만나기도 어려웠다. 한마디로 ‘내가 말하는 내용만 쓰라’는 것이 당시 관료들의 태도였다. 이런 환경에서 기자들이 당국자를 회견장에 불러내고 필요한 답변을 이끌어 내기 위해 만든 것이 기자클럽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한 성청(省廳)에도 여러 개의 기자클럽이 있었다. 전쟁 중 일본의 군국주의 정부는 이를 각 성청마다 하나로 제한해 통제 수단으로 악용했다.”

―지금도 일본식 기자클럽에는 여러 가지 비판이 나오는데….

“물론 기자클럽은 폐쇄적이며 그 밖의 많은 문제점이 있다. 그러나 기자클럽은 현재 보도기관의 취재 거점으로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조직이다. 부작용이 있다고 없애는 것보다는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

―기자클럽이 어떤 방향으로 개혁돼야 한다고 보는가.

“위정자는 불리한 정보를 감추려는 경향이 있다. 기자가 권력을 감시하려면 충분한 취재력이 필요하다. 기자클럽을 단순한 발표의 장으로 이용할 것이 아니라 정책 담당자를 접촉하고 조사연구를 하는 공간으로 활용해야 한다. 기자클럽은 자생적으로 생겨난 만큼 스스로 운영을 개선해야 한다. 폐쇄성 문제는 가급적 많은 기자클럽을 만들면 해결된다.”

―행정기관이 무상으로 기자실을 제공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나.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비밀 정보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다. 정부가 가진 모든 정보는 국민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가 모든 정보를 국민에게 알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국민을 대신해서 취재 보도하는 보도기관이라는 존재가 필요한 것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가 보도기관의 취재와 보도에 필요한 설비를 제공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편의는 유엔이나 국제올림픽위원회도 제공한다. 다만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과도한 편의를 제공해서는 안 된다.”

1990년 교토(京都) 부의 한 주민이 “지방자치단체가 기자클럽에 기자실을 무료로 제공하는 것은 위법”이라며 낸 소송에 교토지법은 1992년 2월 “기자실은 교토 부가 공용(公用)으로 제공하는 것으로 행정재산의 목적 내 사용에 해당한다”며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또 일본 정부는 이에 앞서 1958년 옛 대장성 통고 형식으로 ‘국가의 사무, 사업 수행을 위해 국가가 당해 시설을 제공한다’고 명시한 뒤 대상 중 하나로 신문기자실을 예시한 바 있다.

―2001년 당시 나가노(長野) 현의 다나카 야스오(田中康夫) 지사가 ‘탈(脫)기자클럽’을 선언하고 기자실을 없애 주목을 끌었다. 다나카 전 지사의 시도가 성공했는가.

“성공하지 못했다. 당시 나가노 현의 기자클럽과 기자실을 이용한 곳은 지자체만이 아니다. 기자실이 없어진 이후 나가노 현에 있는 기업과 단체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기자클럽이 갖고 있던 기자회견의 주도권이 지자체 측에 넘어간 것도 잘못됐다. 기자회견의 주도권을 위정자가 가지면 ‘하고 싶은 이야기’만 골라서 할 우려가 있다.”

―한국 정부는 부처별로 운영되던 37개의 브리핑룸과 기사송고실을 3개로 통폐합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세부 내용을 모르는 내가 말하기는 어렵지만, 과거 일본의 군국주의 정부가 전쟁 중 각 성청의 발표 기능을 하나로 통합해 군정보국에 일임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말해 두고 싶다.”

―한국 정부는 이번 조치가 국민의 알 권리를 제약한다는 비판에 정보 공개를 확대하고 브리핑 제도를 충실화하는 등 보완책을 마련하면 문제가 없다고 하는데….

“정보 공개 확대와 브리핑 제도 충실화를 먼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한국의 현 정권은 각료들이 동아일보를 비롯한 일부 비판적인 신문과 인터뷰하는 것을 사실상 금지해 왔다는 견해가 있다. 이를 어떻게 생각하나.

“독재 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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