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파 방송 면허를 갱신해 주지 않음으로써 야당 성향의 TV를 사실상 폐쇄하고 ‘개혁세력’에 전파를 넘겨준 우고 차베스(사진) 베네수엘라 대통령에 대해 세계 곳곳에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베네수엘라에선 27, 28일 이틀간 수천 명이 최루탄을 발사하는 경찰에 맞서 격렬한 항의 시위를 벌였다. 발타사르 포라스 카르도소 주교는 “차베스 대통령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의 입지가 날마다 좁아지고 있다”며 그를 히틀러, 무솔리니, 피델 카스트로와 비교했다.
유럽연합(EU)의 순번제 의장국인 독일은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기본 요소”라며 유감을 표했다. ‘국경 없는 기자회’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위배이며 민주주의와 다원주의 원칙에서 중요한 후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날 차베스 대통령 지지자들은 각종 친여(親與) 매체, 인터넷 등에 차베스 대통령을 옹호하는 글을 수없이 올렸다.
방송 면허 갱신이라는 권한을 이용해 방송을 통제하는 것은 이미 오래전 권위주의 정권들이 즐겨 썼던 낡은 수법. 하지만 ‘개혁의 대의(大義)’를 확신하는 차베스 대통령 지지자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베네수엘라어날리시스 닷컴’은 ‘지난 수십 년간을 통틀어 요즘만큼 베네수엘라 언론들이 자유를 만끽하는 시절은 없었다’는 논리를 동원해 방송 면허 갱신 거부를 언론 탄압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를 반박했다. “TV에선 차베스 대통령에게 비판적인 코멘트가 자유로이 방영되고 거리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신문을 마음대로 사 볼 수 있는데 무슨 언론 탄압이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야당과 서방 언론들은 시민권의 확장으로 시민들이 스스로 확보한 ‘언론자유 공간’을 마치 정권이 허락해 준 것처럼 착각하는 구시대적 논리의 재연이라고 지적했다.
극우 성향의 권위주의 정권이 무너진 뒤 집권한 정권이 언론에 압력을 가할 때 언론이 반발하면 흔히 내세우는 “진짜 독재시절엔 이보다 더한 조치에도 끽소리 못하더니”라는 논리도 등장했다.
이에 대해 언론에 가해지는 압력의 성격이 과거에 비해 합법성의 외피를 더 갖추고 물리력 행사 방법이 간접적인 것으로 바뀐 것은 집권세력의 선의에 따른 결과가 아니라 축적된 시민사회의 역량에 따른 것일 뿐이라는 반박이 나왔지만 차베스 대통령 지지자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폐쇄된 RCTV 대신 28일 0시 방송을 시작한 ‘개혁성향’의 TVes는 “차베스 대통령 지지자들은 즉시 카라카스 시내에 있는 모렐로스 광장에 집결하라”고 호소했고 수천 명이 집권세력의 상징인 붉은색 옷을 입고 모였다. 이들은 “전파가 돈 많은 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민중에게 돌아왔다”며 기뻐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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