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G8 정상회의에선 기후 변화와 미국의 동유럽 미사일기지 건설 계획 같은 민감한 의제들이 다뤄질 예정이다. 참가국 정상들은 각각의 의제에 있어서 자국의 생각을 미리 못 박으려는 듯 개최 전부터 장외 설전(舌戰)을 벌이고 있다. 각국 정상의 노림수는 무엇일까.
▽부시와 푸틴의 속셈=이번 회의에서 가장 수세에 놓인 인물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다. 소극적인 지구 온난화 대책에는 유럽 국가들로부터, 미사일방어(MD) 체제 구축 계획에는 러시아의 거센 공격이 예상된다.
부시 대통령은 유엔의 주도 아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정하자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제안을 거절하고 그 대신 ‘15개국이 별도 모임을 갖고 자체적인 감축 계획을 세우겠다’는 안을 내놓았다. 이번 회담에서 가급적 이 문제를 피해가겠다는 속셈이다.
정상회의에 앞서 5일 체코 프라하를 방문한 부시 대통령은 “동서 냉전은 이미 끝났고 러시아는 우리의 적이 아니다”며 러시아에 MD 문제 협력을 요청하는 한편 러시아의 인권 문제를 거론하며 MD 논란에 ‘물 타기’를 시도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미국의 MD 계획을 주요 의제로 부각시킬 태세다. 이를 위해 “유럽을 타깃으로 미사일 발사 훈련을 할 수 있다”는 초강수를 두었다. 국제무대에서 러시아의 위상과 영향력을 키우려는 계산된 발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메르켈과 사르코지의 제휴=메르켈 독일 총리는 ‘조용하고 실용주의적인 외교’ 역량을 이번 회의에서 또다시 평가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메르켈 총리는 회의 의장으로서 기후 변화를 가장 중요한 의제로 내놓았다. 미국을 거세게 몰아붙여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기 위해선 MD 계획을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의 갈등이 지나치게 부각되지 않도록 조절해야 한다. 이를 위해 메르켈 총리는 ‘직설적인 발언’이 특징인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손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회의에서 국제무대에 데뷔하는 사르코지 대통령의 가장 큰 관심사는 자신의 존재감을 강하게 심는 것. 그는 부시 대통령, 푸틴 대통령과 양자회담을 하고 기후 변화, 미사일 문제, 러시아 인권 문제에 대해 분명한 견해를 밝힐 예정이다.
이번 회의를 끝으로 국제무대에 고별을 선언하는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별다른 역할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옵서버로 참가하는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은 4일 정부가 내놓은 ‘지구 온난화 방지 종합 대책’을 들고 중국의 기후 변화 대책 노력을 적극적으로 알릴 예정이다.
파리=금동근 특파원 gold@donga.com
■ 美-러 MD충돌 배경
미국의 동유럽 미사일방어(MD) 시스템 구축 계획을 놓고 마치 냉전시대의 낡은 필름을 다시 돌리는 듯한 거친 수사(修辭)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영국의 BBC, 미국의 워싱턴포스트 등 주요 서방 언론과 워싱턴 국제안보 전문가들의 분석을 종합해 동유럽 MD 논란에 얽힌 궁금증을 짚어 본다.
Q. 미국은 왜 체코와 폴란드에 MD 기지가 필요한가.
A. MD 시스템은 레이더 기지(알래스카, 캘리포니아, 영국, 그린란드)+요격미사일 발사 시스템(알래스카, 캘리포니아)+함상(艦上) 요격미사일 발사 시스템(130개)으로 이뤄진다.
그런데 미국은 북한으로부터의 위협은 알래스카 기지 및 선상 시스템으로 방어하지만 이란이 미사일로 유럽 국가와 유럽 내 미군기지를 공격할 경우에는 방어망이 없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체코에 레이더 기지를, 폴란드에 요격미사일 기지를 설치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Q. 러시아는 왜 그토록 민감한가.
A. 러시아는 MD 기지가 결국엔 러시아의 미사일을 무력화하는 효과를 내서 미-러 간 군사적 억제력의 균형이 깨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그동안 서방에 너무 무르게 대응해 러시아가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어 버렸다는 내부의 민족주의적 감정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강경한 태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Q. 동유럽 MD 기지 계획은 러시아 미사일을 무력화할 수준인가.
A. 미국이 계획하는 동유럽 MD 요격미사일 발사 능력은 10기 규모다. 러시아의 고성능 미사일 수천 기를 막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러시아는 일단 미국이 동유럽에 발을 들여놓으면 요격 능력이 계속 늘어나고 성능을 개선하면 10년쯤 후엔 얘기가 달라질 것으로 본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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