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이맘때 특파원으로 부임해 왔을 때의 파리 모습은 10년 전 파리를 처음 방문했을 때와 비교해 달라진 게 없다. 자동차가 늘어 거리가 조금 더 붐빌 뿐이다.
지난 3년 동안도 겉으론 별다른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다. 집 앞 빵집은 그대로고 생선가게도 늘 있던 그 자리에 있다. 신문가게 아주머니의 수다는 여전하고, 사진관 주인아저씨는 항상 깔끔한 정장 차림이다.
이런 변함없는 모습이 파리의 매력이다. 사르트르와 헤밍웨이가 커피를 마시며 글을 썼던 카페, 나폴레옹이 생도 시절 모자를 맡기고 술을 마셨다는 레스토랑, 피카소가 즉석에서 그린 그림을 술값 대신 냈다는 비스트로….
겉으론 이처럼 변화가 없지만 사람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난 3년간 적지 않은 변화가 있다.
가장 큰 변화는 정보기술(IT)이 사람들의 생활에 깊숙이 파고들었다는 점이다. 3년 전만 해도 길거리에서 휴대전화로 통화하는 사람이 드물었다. 당시 ‘삼성’ 휴대전화는 부자이거나 유행에 앞선 사람들의 상징이었다. 그러던 휴대전화가 이젠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삼성’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사람도 늘어 더는 자랑거리가 아니다. 휴대전화 사용이 늘었다는 점은 수치상의 변화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느리고 여유 있는 삶을 누리던 프랑스인들의 생각이 바뀌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인터넷 사용에서도 같은 변화를 읽을 수 있다. 3년 전만 해도 가정에서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서비스가 좋을 리 없었다. 속도가 느릴 뿐 아니라 도중에 접속이 끊기는 일이 잦았다. 지금은 영화 한 편 내려받는 데 빠른 시간대엔 15분이면 충분하다. 무선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호텔, 카페도 크게 늘었다.
IT의 발전과 더불어 프랑스에도 세계화 바람이 크게 불었다. 미국의 커피 전문점 스타벅스는 이제 곳곳에서 눈에 띈다. 반(反)세계화 기수들이 맥도널드 햄버거 가게에 불을 질렀던 일은 이미 ‘전설’이다.
할인점의 포도주 코너엔 미국, 칠레, 호주산 포도주가 자리를 넓혀 가고 있다. 영어 사용에 대한 거부감도 크게 줄었다. 오히려 요즘엔 시내 가게에서 종업원들이 영어 실력을 자랑하지 못해 안달이다.
이 같은 변화의 공통분모는 ‘경쟁력’이다. 프랑스인들은 그동안 프랑스가 발전에 뒤처졌다는 데 동의한다.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런 배경에서 성장을 위해선 노동, 복지 제도에 손질이 불가피하다는 공감대도 형성되고 있다.
그런 공감대 속에서 개혁을 주창한 새 대통령이 탄생했다. 그는 파업에 단호하게 대처하고 이민자 수용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겠다고 다짐했다. ‘솔리다리테(연대)’, ‘톨레랑스(관용)’ 같은 전통적 가치와의 충돌도 불사하겠다는 태세다. 과거 어느 때보다도 빠른 변화가 예상된다.
앞으로 3년, 10년 뒤 프랑스는 어떻게 변해 있을지 궁금하다. 늘 같은 자리를 지키는 에펠탑, 말없이 미라보 다리 아래를 흐르는 센 강은 변함이 없겠지만….
금동근 파리 특파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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