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역습’ 속앓는 미국

  • 입력 2007년 6월 11일 03시 08분


“의표(意表)를 찔렸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기습 제안이 미국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7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이란의 미사일로부터 유럽을 보호하기 위해 미사일방어망(MD)이 꼭 필요하다면 (러시아의 코앞인) 체코나 폴란드가 아닌 (이란과 가까운) 아제르바이잔에 공동 레이더 기지를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동유럽 MD 기지는 러시아를 염두에 둔 게 아니다”고 강조해 온 미국으로선 반대할 명분이 약한 카드를 던진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8일 주요8개국(G8) 정상회담 폐막 기자회견에서도 “요격미사일을 터키나 이라크, 그리고 해상에도 설치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세를 올렸다.

일단 “흥미로운 제안”이라고만 코멘트했던 부시 대통령은 8일 교황 베네딕토 16세 알현때 교황이 이 문제를 묻자 기자들을 흘끗 쳐다보면서 “좀 있다 말씀 드리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의 고든 존드로 대변인은 “매우 복잡한 사안”이라며 “러시아 측과 다양한 측면으로 논의해 보겠다”고만 밝혔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8일 “검토할 만한 가치가 있지만 미사일 기지의 위치는 그냥 갑작스레 정하는 게 아니다”며 MD 계획을 당초 예정대로 추진할 방침임을 시사했다.

하지만 납득할 만한 이유를 대지 못한 채 제의를 거부하면 미국은 명분 대결에서 밀리게 된다. “서유럽을 겨냥해 미사일을 배치하겠다”며 ‘핵 전쟁’ 운운한 푸틴 대통령의 발언에 비판적이었던 유럽의 여론도 돌아설 수 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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