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대선주자 중 한 명인 존 에드워즈 전 상원의원이 음주운전으로 기소된 억만장자 상속녀 패리스 힐턴 씨가 ‘신경쇠약’을 이유로 교도소에서 풀려난 것에 대해 7일 한 발언이다. 힐턴 씨는 결국 다음 날 재수감됐지만, 그녀의 가석방은 미국판 ‘유전무죄’로 논란이 많았다.
‘두 개의 미국.’ 1990년대 이후 본격화한 세계화 물결에 실려 경이적 경제성장을 해 온 미국에서 요즘 소득 격차로 인한 ‘두 개의 미국’ 이슈가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요즘 미국에서 최고의 수입을 올리는 직종은 헤지펀드 매니저. 지난해 수입 기준으로 상위 25명 헤지펀드 매니저의 평균 연봉은 보너스를 합쳐 2억4000만 달러(약 2280억 원). 이 중 1위는 17억 달러를 벌었다.
이처럼 월가에서 고소득을 올리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요즘 뉴욕 맨해튼 아파트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전체 미국 부동산시장은 아직도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맨해튼은 다른 세상이다.
반면 세계 최고의 부자 나라 미국이지만 빈곤층은 고달픈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소득 하위 계층 20%의 평균소득은 1만3000달러(약 1235만 원)에 불과하다. 빈곤층은 3700만 명에 이른다.
1979년부터 2001년 사이 미국 실질가구소득 증가폭을 보면 소득 최상위 5% 계층의 소득은 81% 증가했다. 반면 하위 20% 계층은 실질소득이 3% 느는 데 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치권에서 ‘빈곤 문제의 정치 쟁점화’는 금기사항이었다. 중산층 유권자들을 소외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그러나 에드워즈 전 상원의원은 아예 ‘빈곤과의 전쟁’을 주요한 대선 공약으로 제기해 이 문제를 정면으로 이슈화했다.
유력 대선 주자가 빈곤 문제를 본격 제기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미국 사회에서 빈곤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음을 반영한다.
빈곤 문제와 함께 미국 사회의 치부로 꼽히는 건강보험 미가입자 문제가 대선에서 쟁점화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한 현상. 미국은 의료 수준에선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건강보험이 없는 사람이 4200만 명에 이른다. 건강보험료가 너무 비싼 탓에 보험료를 지원해 주는 변변한 직장이 없으면 아예 건강보험 가입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대선 주자들은 저마다 건강보험 개혁 방안을 내놓고 있으며, 얼마 전 뉴햄프셔 주에서 열린 양당 후보토론회에서도 이 문제는 주요 쟁점이었다.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재무장관을 지낸 래리 서머스 전 하버드대 총장도 10일자 뉴욕타임스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세계화 흐름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소득 불평등을 개선할 수 있는 정책을 연구 중”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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