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은 나를 죽이려고 했지만 주민들이 내몸을 지켰다”

  • 입력 2007년 6월 12일 02시 59분


러트렐 중사가 극적으로 생환 후 9·11테러 피해 현장인 ‘그라운드 제로’를 찾아 희생자들의 사진 등을 보고 있다. 사진 출처 워싱턴포스트 인터넷판
러트렐 중사가 극적으로 생환 후 9·11테러 피해 현장인 ‘그라운드 제로’를 찾아 희생자들의 사진 등을 보고 있다. 사진 출처 워싱턴포스트 인터넷판
2005년 6월 28일 아프가니스탄 동북부.

미국 해군 특수부대(Seal) 소속 마커스 러트렐(32) 중사는 탈레반 반군과의 교전으로 동료 3명을 잃고 홀로 낙오했다. 수류탄 파편에 얼굴 살점이 찢겨 나갔고 코가 부러졌으며 척추에 금이 가 의식마저 혼미했다. 생과 사의 경계에 선 시간. 멀리 구조 헬기의 굉음이 들렸지만 흙먼지에 목이 막혔다. 조난 신호등을 흔들었지만 헬기는 돌아갔다. 어둠과 함께 공포가 뼛속 깊이 엄습했다.

러트렐 중사가 아프간에 배치된 것은 2005년 4월. 그는 “9·11테러로 희생된 미국인의 두 배에 이르는 테러리스트를 살상하겠다”며 전의를 다졌다. 바지 속에는 테러 희생자의 사진도 구겨 넣었다.

하지만 작전 중 중상을 입은 러트렐 중사는 그가 ‘증오의 대상’으로 삼았던 아프간 사람들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지고 미국으로 돌아왔다.

부상해 쓰러져 있던 러트렐 중사는 우연히 인근을 지나던 아프간 주민 3명에게 발견돼 마을로 옮겨졌다. 주민들은 상처를 씻기고 새 옷을 입혔고 음식을 내놨다. 탈레반 반군 전사들이 마을에 내려와 러트렐 중사를 내놓으라고 위협할 때도 주민들은 그를 지켜주었다. 마을 사람들은 부상한 사람이 마을로 들어오면 보호해 주는 것이 ‘부족법’이라며 러트렐 중사를 넘겨주지 않았고 탈레반도 이런 부족법을 존중했다.

러트렐 중사는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이들 주민과의 생활이 처음엔 답답했지만 주민들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으며 서로 정도 들었다. 러트렐 중사는 낙오한 지 5일 만에 주민들의 도움으로 미군 수색대에 구조요청을 할 수 있었다. 러트렐 중사는 헤어지기 전 목숨을 내놓고 자신을 돌봐줬던 아프간 주민과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워싱턴포스트 인터넷판은 11일 아프간 전장에서 살아남은 러트렐 중사의 극적인 생환기를 소개했다.

러트렐 중사는 최근 뉴욕 시에 있는 9·11테러 현장 ‘그라운드 제로’를 찾았다. 그는 “아프간 주민들은 나를 지켜주고 아들처럼 대해줬다”며 아프간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공사장 굴착기의 소음 속에서 “악의 소굴에서 뜨거운 인간애를 찾았습니다”라고 말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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