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기업사냥꾼’ 한국 찍고 일본으로

  • 입력 2007년 6월 14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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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KT&G의 경영권을 압박했던 미국계 투자펀드 스틸파트너스가 이번에는 일본 기업들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13일 도쿄신문에 따르면 5년 전 일본에 진출한 스틸파트너스는 지금까지 4000억 엔(약 3조2000억 원)이라는 거액을 들여 컵라면의 원조 닛신식품과 3위 맥주업체 삿포로홀딩스 등의 주식을 대량 사들였다. 지분이 두 자릿수를 넘어선 기업만 11개에 이른다.

스틸파트너스가 일본 기업에 처음부터 적대적인 존재는 아니었다. 이 투자펀드가 냉혹한 ‘기업 사냥꾼’이나 교활한 ‘그린 메일러(Green Mailer)’의 이미지로 일본 기업들 사이에 악명을 떨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0월 즉석라면업체 묘조식품을 인수합병(M&A)하겠다고 선언하면서부터.

그린 메일러란 특정 회사의 주식을 사들인 뒤 비싼 값에 주식을 되사라고 위협하거나 다른 곳에 웃돈을 붙여 팔아치우는 투자자를 말한다.

스틸파트너스의 갑작스러운 공세에 다급해진 묘조식품은 업계 1위인 닛신식품에 도움을 요청하는 이른바 ‘백기사 전략’으로 간신히 위기를 넘겼다.

다음 ‘먹잇감’은 삿포로홀딩스였다. 스틸파트너스는 올 2월 이 회사에 주식 66.6%를 사들이겠다고 제안했다. 삿포로홀딩스의 반발로 이 일 또한 실패로 일단락됐지만 스틸파트너스는 기세가 꺾이기는커녕 오히려 공세의 범위를 넓혔다.

식품업체인 불독소스와 전기톱제조업체인 덴류세이쿄에 대해서는 특정 가격에 증권시장에서 다수의 주주에게서 주식을 사 모으는 ‘주식공개매수(TOB)’에 나섰다. 과자업체 에자키글리코에도 배당금 5배 증액을 요구하는 등 여러 기업을 상대로 다양한 요구사항을 내걸었다.

이 같은 스틸파트너스의 공세에 일본 기업들은 “기업 사냥꾼에게 회사를 빼앗길 수 없다”며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냈다.

스틸파트너스의 워런 리히텐슈타인 대표도 이를 의식한 듯 12일 도쿄에서 이례적인 기자회견을 열어 “스틸파트너스는 일본 기업의 적이 아닌 조력자”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그는 “일본의 M&A 방어제도는 세계 최악”이라고 주장하며 ‘기업은 주주의 것이 아닌 임직원의 것’이라고 여기는 일본식 관행과 계속 싸우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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