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외교관이었던 그는 1968∼1970년 오스트리아 외교장관을 지낸 후 1972년 4대 유엔 사무총장에 선출돼 1981년까지 재임했다. 사무총장 재직 당시 그는 “세계에 기독교의 비전을 전파한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활발한 외교활동을 펼쳤다. 캄보디아 내전 사태 해결을 위한 국제 콘퍼런스와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그는 1986년 오스트리아 대통령에 출마해 당선됐으나 일명 ‘발트하임 사건’이 터지면서 외교적 논란의 대상이 됐다.
대통령 선거 직전 오스트리아 시사주간지 ‘프로필’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그가 유고슬라비아와 그리스에서 나치 장교로 근무하면서 6만여 명의 유대인을 강제수용소로 이송하는 데 관여했다는 사실을 폭로한 것.
그런 논란 속에서도 대통령에 당선됐으나 이스라엘은 곧바로 오스트리아 대사를 소환하고 취임식 참석을 거부했다.
1988년 국제조사위원회는 “발트하임이 나치에 가담한 것은 사실이며 그가 유대인 학살을 직접 수행하지는 않았지만 이를 방관한 ‘도덕적 책임’은 피할 수 없다”라고 결론지었다.
그는 “1941∼1944년 당시 어떤 일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라며 나치 가담 사실을 부인했다. 대통령 재직 시 그를 초청하는 나라도 없고 찾아오는 지도자도 없이 외로운 생활을 보내다 1992년 재출마를 포기했다.
이후 정계에서 은퇴하고 빈에서 생활해 온 그는 1990년대 말 발간한 자서전에서 “전쟁 당시 나는 주어진 임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고백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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