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대 25%.’
에너지와 관련한 미국의 고민과 불균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숫자다. 미국 인구는 전 세계 인구의 4.6%이지만 석유를 포함한 전 세계 에너지의 25%를 소비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경제 규모에서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5%를 차지한다.
이처럼 에너지 소비가 많기 때문에 미국은 석유와 석탄 등이 풍부한 자원대국임에도 불구하고 전체 에너지 소비량의 60%를 수입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고유가 현상이 장기화되고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 확보에 비상이 걸리면서 에너지 정책을 원점부터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공감대를 얻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대책 중 하나가 원자력 발전의 확대. 2005년 기준으로 원자력이 미국 에너지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에 불과하다. 석유(40%)는 물론 석탄(23%)이나 천연가스(23%)에 비해서도 훨씬 뒤처진다.
이처럼 미국에서 원자력 비중이 낮은 것은 미국은 석유, 석탄 등 기타 자원이 풍부해 핵폐기물 처리 등 ‘골치 아픈’ 문제가 많은 원자력 발전을 굳이 확대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1979년 미국에서 발생한 스리마일 섬 원전 사고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사건으로 미국에선 원자력에너지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높아지면서 30년 가까이 원전 건설이 중단됐다.
그러나 최근 들어 원자력발전에 대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지난해 연두 국정 연설에서 “미국은 석유에 중독돼 있다. 원자력이 미국의 석유의존도를 줄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구온난화가 이슈가 되면서 이 같은 문제에서 자유로운 원자력이 더욱 각광을 받고 있다.
미 외교정책의 브레인 역할을 하는 미국외교협회(CFR)도 지난해 10월 전직 미 행정부 고위 간부와 에너지 전문가들이 참여해 작성한 별도 보고서에서 “미국이 원자력을 앞으로 더욱 많이 활용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석유를 대체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CFR는 원자력 발전 활성화의 전제조건으로 핵폐기물 관리에 대한 분명한 진전과 원전 안정성 확보 등을 제시했다.
미국은 2010년까지 신규 원전 1, 2기 건설을 추진한다는 방침을 공식화했고, 일본과의 기술협력도 본격화하고 있다.
이와 함께 석유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자동차를 대상으로 한 규제도 본격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자동차 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국에서 석유 소비의 3분의 2는 자동차가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이에 따라 자동차 제조회사에 일정 수준의 연료소비효율을 의무화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미국은 휘발유에 대한 세금이 약하다. 이를테면 현재 미국에선 갤런(3.8L)당 휘발유 가격이 3달러를 넘었다고 아우성이지만 세금이 높은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미국인들은 휘발유를 거의 반값에 소비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휘발유에 붙는 세금을 올려야 소비가 줄어들 것이라는 의견이 많지만 미국은 교통시스템이 대중교통이 아닌 자가용 위주로 구성돼 있어 아직 여론의 호응은 받지 못하고 있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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