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만의 가치 찾아 지역 공동체로 나아가야”

  • 입력 2007년 6월 19일 03시 02분


《“동아시아 각국은 서로 공유하는 가치와 전망을 찾아내 지역공동체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리에 아키라(入江昭·역사학·사진) 하버드대 명예교수는 동아일보사, 동아일보사 부설 화정평화재단, 한국국제정치학회 공동주최로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일보사 21층 강당에서 열린 ‘21세기 세계화 시대의 동북아와 한반도’ 심포지엄에서 동아시아의 바람직한 미래를 이같이 진단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초청 ‘2007 문명과 평화 국제포럼’ 참석차 내한한 이리에 교수는 미국의 아시아 정책에 정통한 석학으로서 편협한 국가주의적 관점에 문제를 제기하고 국가 간 연대를 강조해 왔다. 1988년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미국 역사학회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제국주의와 민족주의 넘어 초민족주의 시대로”=이리에 교수는 20세기 이후 세계 역사를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의 제국주의 시대 △민족주의 시대 △1970년대 이후 후기민족주의(post-nationalism) 또는 초민족주의(transnationalism) 시대로 구분했다.

이리에 교수는 “제국주의 시대의 국제 관계는 주로 열강 사이의 관계에 의해 결정됐다. 동아시아 특히 한반도의 운명도 여기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맹을 확대하기 위한 미국과 소련의 경쟁으로 국제 관계가 결정됐으며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도 이에 따라 갈등에 휩싸였다고 그는 회고했다.

제국주의, 민족주의 시대는 197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중대한 변환에 접어들었다. 그는 국가를 벗어난 초국가적 세력의 등장을 주목했다.

이리에 교수는 “이 시기에 경제적 세계화로 국가 간 상호의존이 심화됐으며 정보기술의 혁신에 따라 국가와 개인이 정보와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또 “국가 외에 비정부기구(NGO) 등 시민사회의 성장도 국제 관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덧붙였다.

그는 “빈부 격차, 이념 및 종교적 갈등과 같은 부작용도 있었지만 세계화는 다양성과 뒤섞임의 세계를 만들어 냈으며 이를 가치와 비전, 이익의 공유로 발전시킬 수 있는지가 더욱 중요해졌다”고 전망했다.

▽아시아 지역공동체를 향하여=그는 가치와 비전을 공유한 지역공동체의 대표적인 사례로 유럽연합(EU)을 들며 아시아도 지역공동체로 발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세계경제에서 동아시아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면서 제국주의의 침략과 수탈의 대상이던 아시아가 발언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다”며 동아시아가 국제 관계에서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EU처럼 지역공동체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날 토론자로 나선 하영선(외교학) 서울대 교수는 “국제 질서를 보면 여전히 정치 군사 권력의 비중이 높은데 ‘문화국제주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라고 질문하며 “민족주의적 갈등을 심각하게 겪는 동아시아 지역주의의 앞길이 쉽지 않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리에 교수는 “중요한 것은 경제적 상호의존”이라며 동아시아의 경제 발전이 가속화될수록 상호 이해가 진전될 것이라고 답했다.

강규형(현대사) 명지대 교수는 “‘국사’를 강조하는 역사교육을 보면 가치의 공유라는 목표가 비관적으로 여겨진다”며 건전한 지역공동체 건설의 해법을 물었다.

이리에 교수는 “일본의 역사 인식을 우려하기에 일본의 역사관 변화를 위해 압력을 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장기적으로 동아시아가 인권과 환경이라는 가치를 공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내년 베이징(北京) 올림픽의 슬로건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One World, One Dream)’처럼 아시아의 많은 사람들이 가치를 공유한다면 인류 문명을 파국에서 건져낼 수 있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이날 심포지엄에는 김학준 동아일보 사장, 하용출(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한국국제정치학회장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이리에 아키라 교수는…:

1934년 일본 도쿄 출생. 1961년 하버드대 박사(역사학)학위 취득. 캘리포니아대, 시카고대, 하버드대 교수 역임. 1988년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역사학회 회장 지냄. 2005년부터 하버드대 명예교수로 재직. ‘미일관계 50년’ ‘태평양전쟁의 기원’ ‘정치권력을 넘어서’ ‘20세기의 전쟁과 평화’ 등 많은 저서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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