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옛 소련이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발사한 지 50년이 되는 해. 러시아가 과거 과학강국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석유 호황으로 벌어들인 돈을 IT 분야에 쏟아 붓고 있다고 경제전문지 비즈니스위크가 25일 보도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올 4월 두마(러시아 의회) 연설에서 “IT는 러시아의 미래”라고 강조하며 나노 신기술 개발에 7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자금력이 부족한 IT 기업에 자본금을 대기 위해 12억 달러의 기금을 보유한 ‘러시아 벤처회사’라는 정부 산하 금융기관도 설립했다. 지난해부터 모스크바 등 대도시 7곳에는 첨단기업들이 입주할 ‘IT 파크’를 건설 중이다.
‘IT 육성 프로젝트’의 수장에는 세르게이 이바노프 제1 부총리가 임명됐다. 그는 내년 3월 푸틴 대통령 퇴임 후 권력을 승계할 것으로 예상되는 크렘린의 실권자다.
전문가들은 수많은 국가가 뛰어든 IT 육성 경쟁에서 러시아가 일단 유리한 고지를 점한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과 치열한 과학기술 경쟁을 벌였던 소련 시절의 인력 인프라가 건재하기 때문이다. 러시아 전역의 3500개 과학 계통 연구소에는 60만 명의 연구 인력이 근무한다. 매년 대학을 졸업하는 과학 기술 전공자도 20만 명으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그러나 비즈니스위크는 “러시아의 IT 열풍이 철저하게 정부 주도로 이뤄지는 점은 우려할 만하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이 기술개발 경쟁을 벌이면서 돈이 자발적으로 IT 분야로 흘러들기보다는 정부가 거의 투자를 독점하다시피 하면서 각종 부패가 끼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70억 달러를 들인 나노 신기술 개발 프로그램의 총책임자에 푸틴 대통령의 측근으로 IT 분야 경력이 전혀 없는 정치인이 선정된 것도 이런 우려를 뒷받침하고 있다.
또 정부 투자금의 대부분이 IT 창업의 초기 투입자본으로 들어가기보다는 권력과 연줄이 닿은 정부 연구소나 기존 IT 기업들에 배분되면서 신기술 개발 의욕을 꺾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학자들은 정부 기금에 의존하다 보니 자신이 개발한 기술의 지적재산권이 정부에 귀속되는 것을 우려한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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