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브라운 총리가 올해 41세의 데이비드 캐머런 보수당 당수에게 인기도에서 밀릴 경우 바통을 이어받을 1순위 후보로 꼽힌다.
지난해 브라운파가 토니 블레어 총리에게 ‘쿠데타’를 일으키자 일부 블레어파 의원은 ‘늙은 브라운으로는 차기 총선에서 젊은 캐머런 당수를 이기기 힘들다’고 판단해 밀리번드를 후계자로 내세우며 브라운파와 일전을 시도했다. 당시 밀리번드는 차기를 내다보며 스스로 갈등을 봉합했다. 브라운 총리가 그를 외교장관에 앉힌 것은 일종의 보답 측면이 있는데 밀리번드가 막후에서 ‘비겁하게’ 브라운 총리에게 사과했다는 소문도 들린다.
밀리번드 외교장관은 이미 오랫동안 노동당의 책사(brain)로 꼽혀 왔다. 1994년 20대로 블레어 총리의 정책수석을 맡은 그는 1997년 ‘제3의 길’ 매니페스토 작성에 깊숙이 간여했다. 블레어파로 분류되는 그이지만 블레어-브라운의 대립은 개인적인 라이벌 관계에서 생긴 것이므로 정책상 화합할 여지는 충분하다는 분석이다.
외교정책에서 밀리번드 장관은 이라크전쟁에 우려했지만 참전에는 찬성표를 던졌고 지난해 레바논 사태 때는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즉각적 휴전에 반대했다.
신세대답게 첨단기술광인 그는 블로그를 개설한 첫 영국 장관이었고 가상공간 ‘세컨드 라이프’에 아바타도 갖고 있다.
영국 ‘더 타임스’는 이미 1993년 그와 현 캐머런 당수를 블레어 세대와 차별되는 정치지도자군(群)으로 꼽았다. 둘 다 같은 시기에 옥스퍼드대를 다녔고 철학과 정치경제를 전공했으며 당에서 정책연구가로 성장했다. ‘정책은 전문가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는 세대다.
그러나 두 사람의 집안과 성장 배경은 상이하다. 밀리번드 장관의 아버지는 나치의 박해를 피해 벨기에에서 영국으로 망명한 사회주의자였고 그 자신은 평준화 학교인 종합학교(comprehensive school)를 다녔다. 반면 캐머런 당수는 귀족 가문의 후손으로 명문 사립학교인 이튼스쿨을 나왔다.
밀리번드 장관의 부인 루이스 새클턴 씨는 미국 시민권자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주자다.
한편 브라운 총리는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내무장관에 처음으로 자키 스미스 여성장관을 임명한 것을 비롯해 큰 폭의 개각을 단행했다. 오랜 정치적 동지인 앨리스테어 달링 통상산업장관은 지난 10년간 영국 경제의 호황을 이끌어온 브라운 총리에게서 재무장관 자리를 이어받았다.
파리=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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