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의 호평은 홍콩 및 중국 본토가 동반해서 고속 질주하는 경제성과에 국한된다. 정치적 측면에 대해서는 홍콩에 아직 민주화의 진전이 없거나 심지어 퇴보하거나 중국식 교육방식의 주입으로 중국화 또는 사회주의화가 되지 않느냐고 우려한다.
이런 지적은 일국양제의 정치적 의미를 과소평가하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홍콩과 본토의 정치 관계는 갈 길을 각자 가거나 한쪽이 다른 한쪽을 삼키는 방식이 아니다. 마찰이 없지 않지만 상호 이해, 상호 학습, 상호 포용을 통해서 동반 발전하는 긍정적인 측면을 보인다.
홍콩의 경우를 보자. 당시 홍콩인은 상당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 100년간 영국 통치하에 있던 홍콩인은 시민의식이 강했지만 국민의식은 없었다. 주권 반환 이후 본국으로부터 애국주의 교육과 인적 물적 교류가 늘어나면서 중국에 대한 홍콩인의 이해가 심화됐다. 자신이 주권국가인 중국의 국민이라는 인식도 강해진다.
다른 한편으로 홍콩인은 홍콩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홍콩사회의 핵심 가치인 자유, 다원성, 법치, 독자적인 특성을 지켜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 ‘홍콩인에 의한 홍콩 통치(港人治港)’를 통해 홍콩인의 홍콩을 만들자고 강조한다.
영국 통치하에서 홍콩인은 경제 IQ가 매우 높지만 정치에 무관심했다. 하지만 2003년 수십만 명의 시민이 인권을 침범하는 홍콩기본법 23조 입법을 수정하라며 대규모 집회에 참여한 모습은 유례없이 높은 정치참여 의식을 보여 준다. 시선을 중국 본토로 돌려 보자. 일국양제는 중국 정부가 많은 것을 경험하게 만들었다. 당국은 홍콩의 청렴하고 효율적인 행정 시스템, 법치화, 성숙한 평화 시위 문화를 체험했다. 이제까지 본토에서 사용했던 상의하달식 권위주의적 정치는 자유와 다원성을 가진 홍콩에서 삼가야 함을 알 것이다.
대규모 시위를 통해 나타난 홍콩인의 민의에 중국 정부가 양보한 일은 전례가 없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중국 당국도 시민의 요구를 서서히 존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우기 시작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물과 불처럼 서로 용납하지 못한다. 냉전시대에 세계는 양분됐고 서로가 불공재천(不共戴天)의 원수였다. 홍콩에서의 일국양제 실험은 양 체제가 상호 이해를 통해 포용하고 존중함으로써 조화로운 관계로 발전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한반도에서 남한의 남북한 공동체 통일방안과 북한의 연방제 통일안이 서로 대립하지만 한반도에 화해의 기운이 올 것이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일국 내에서 상호 공존이 가능하다는 점을 홍콩과 중국의 경우에 비춰서 한반도에 어떤 식으로 적용할지 남북한 당국자의 비전이 요구된다.
리판 강남대 교수·중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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