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전직 최고위 공중보건 관리가 의회에서 증언한 내용이 파문을 낳고 있다.
11일 뉴욕타임스와 로스앤젤레스타임스 등에 따르면 해군 중장 출신인 리처드 카모너(사진) 전 연방의무감(공중위생청장)은 미 하원의 정부개혁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과학적 문제에 대한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정치적 개입 실태를 폭로했다.
이번 증언은 미 항공우주국(NASA) 과학자들과 환경학자들이 “부시 행정부가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약화시키기 위해 보고서 왜곡을 강요했다”고 주장한 데 이어 나온 것으로 부시 행정부에 대한 과학계 전반의 거부감을 보여 준다.
카모너 전 연방의무감은 “줄기세포 연구 문제가 이슈로 제기됐을 때 이에 대한 과학적 분석과 전망을 내놨지만 백악관은 이미 (연구지원 반대) 방침이 결정됐다는 이유로 나에게 침묵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이후 백악관은 줄기세포 연구에 관한 검토보고서에서 그의 의견을 아예 삭제해 버렸다.
그에 따르면 부시 행정부는 청소년 성교육 정책을 논의할 때도 ‘순결’만을 강조했을 뿐 사후피임약 사용 같은 의학적인 대안을 외면했다. 정신질환자나 교도소 수감자의 건강상태 등에 대한 의견도 과소평가되거나 아예 묻혀버리는 경우가 잦았다.
그는 “간접흡연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중요한 보고서를 작성했는데도 정치적인 이유로 발표가 오랫동안 연기됐고 한때 발표하기 힘든 상황에까지 몰렸다”며 “행정부 인사들은 객관적 과학지식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칼 로브 백악관 비서실 차장과 공화당 인사들의 정치 행사에는 꼬박꼬박 참석해야 했고, 연설문을 작성할 때는 ‘부시 대통령의 이름을 페이지당 세 번씩 언급해 달라’는 요구를 받기까지 했다고 폭로했다. 그러나 백악관 측은 “카모너 전 연방의무감은 직함에 합당한 모든 권한을 부여받았고 정책 집행에 필요한 전폭적인 지원도 이뤄졌다”고 반박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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