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화창했다. 14일 오전 8시 15분(현지 시간). 며칠 동안 내리던 비와 차가운 바람이 가라앉았다.
답사단은 조국의 운명을 짊어진 이준, 이상설, 이위종 특사가 무거운 발걸음을 내디딘 플랫폼에서 가두행진을 시작했다. 태극기를 조심스레 펼쳐 든 학생들이 선두에 나섰다.
토요일 이른 아침이라 시내를 오가는 시민이 거의 없었다. 답사단은 한산한 거리를 걸으며 이준 열사를 기리는 노래를 불렀다.
30여 분이 지난 뒤 헤이그 특사 100주년 기념식장인 신교회에 도착했다. 애국가를 부르며 입장하자 네덜란드 한인회 교민 10여 명이 나와서 일행을 반겼다.
유럽 한국학의 본산인 라이덴대의 왈라번 교수와 김명신 교환교수, 7일부터 헤이그시청 전시실에서 열린 특사 100주년 기념 한국현대미술전시회의 참가 작가 50여 명도 보였다.
국가보훈처가 주관한 기념식은 오전 10시에 시작됐다. 주제는 ‘큰 죽음, 1000년을 기억하리라’.
김정복 국가보훈처장, 최종무 주네덜란드 대사, 김학준 동아일보 사장, 신경하 대한기독교감리회 감독회장, 이홍구 전 국무총리, 빔 데트만 헤이그 시장을 비롯한 내빈과 교민 등 700여 명이 예배당을 메웠다.
첼리스트 정명화 씨가 유학생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와 함께 민요 ‘한오백년’, 가브리엘 포레의 ‘꿈 뒤에’를 연주했다. 참석자 모두가 숙연한 표정이었다.
브룬스 레이드스헨담 시장은 “헤이그 특사의 행적은 한국에만 중요한 역사가 아니라 평화를 지켜야 할 세계의 모든 젊은이가 마음 깊이 새겨야 할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날 오후 3시에는 이준 열사를 기리는 교회가 생겼다. 헤이그 북동쪽의 레이드스헨담 시 프린센호프가(街) 8번지.
4m 높이의 단층 회백색 벽돌 위에 흑갈색 목조 지붕을 단정히 얽어 올린 건물이다. ‘제대로 살아야 사는 것’이라 했던 이준 열사의 인생관을 보여 주는 듯했다.
기독교대한감리회는 이 교회를 매입하려고 지난해 7월부터 한국에서 10억 원을 모금했다.
이준 열사는 감리교단 소속인 서울 상동교회의 청년단장이었다. 독립운동을 활발히 지원하던 상동교회 전덕기 목사의 감화를 받아 기독교에 입문했다.
본보 김학준 사장은 기념사에서 “이준 열사는 헤이그로 떠나기 전에 전 목사의 기도를 받았다”며 “황제가 부여한 사명을 완수하겠다는 의지와 함께 굳건한 종교적 신념이 특사 임무 수행에 커다란 힘이 됐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답사단은 오후 7시 니우 에이컨다위넌 시립공동묘역에 있는 이준 열사 기념묘역을 찾았다. 모두가 국화를 한 송이씩 들고 흉상 앞에 헌화했다.
연세대 3학년 왕승현(24·생물자원공학과) 씨는 “부모님의 권유로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여행이었지만 갈수록 나라와 주권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다”며 “당연한 듯 누리는 자유가 스스로를 지켜낼 힘이 있어야 얻을 수 있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이준 열사 순국 100주년을 기리는 추념식이 14일 오전 서울 강북구 수유동의 ‘이준 열사 묘역’에서 열렸다.
‘일성 이준 열사 기념사업회’(회장 전재혁)가 주관한 행사에는 정일권 국가보훈처 차장, 김국주 광복회장, 한스 헤인스브루크 주한 네덜란드대사 등 5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오후 6시부터는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특사의 뜻을 계승하고 알리는 내용의 문화예술제가 개최됐다.
헤이그=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주최 : 동아일보사, 기독교대한감리회
후원 : 주네덜란드 한국대사관, 네덜란드 헤이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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