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어로 `구도자'라는 뜻을 갖고 있는 탈레반은 지난 1994년 구 소련군이 아프간에서 철수한 뒤 남부 칸다하르주에서 물라 모하메드 오마르라는 젊은 수니파 신학자에 의해 조직됐다.
펜 대신 총을 든 근본주의 학생 2만5천명으로 출발한 탈레반은 군벌 세력에 대항하면서 꾸준하게 영향력을 확장시켰고, 결국 지난 1996년 아프간의 실질적인 통치세력으로 발돋움했다.
탈레반은 집권 과정에선 오랜 내전에 시달린 아프간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지만, 집권 이후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를 앞세운 공포정치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다.
여성들의 사회 활동을 일절 금지하는 한편, 범죄자에 대해선 신체 절단형과 공개처형을 실시했다. 특히 이슬람 율법의 `우상금지'를 내세워 바미얀 석불 등 인류 문화유산을 파괴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국제사회에서 `왕따' 취급을 받던 탈레반 정권이 붕괴된 것은 지난 2001년 9.11테러가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당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테러 배후로 당시 아프간에 은신하고 있던 오사마 빈 라덴을 지목한 뒤 탈레반 정권에 신병 인도를 요구한 것.
그러나 탈레반이 부시 대통령의 요구를 거부하자 미국은 영국과 함께 아프간 공습을 개시, 두 달 만에 탈레반을 권좌에서 축출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탈레반 지도자 오마르를 비롯한 잔당 세력은 미국의 추적을 피해 파키스탄접경 파슈툰 부족 거주 산악지역에 은신하면서 권토중래를 노리고 있다.
서방 정보기관들에 따르면 탈레반은 미군과 나토군의 거듭된 공격에도 불구하고아프간 남부와 동부에서는 과거의 세력을 회복하는 등 어느 정도는 재기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탈레반은 지난 2001년 권좌에서 축출된 이래 가장 강력한 공세를 펼쳤고 한 해동안 민간인 1천여 명을 포함해 총 4천여 명이 사망했다.
이런 가운데 아프간에는 현재 미군 1만여 명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군 3만7천명이 배치된 상태에서 막바지 공세를 취하고 있지만 성과는 미흡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번에 한국인들이 납치된 곳도 탈레반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아프가니스탄 남부 가즈니주다.
디지털뉴스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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