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인 23명이 탈레반에 납치된 사건이 발생한 지 5일째인 23일에도 백악관이나 국무부는 대변인 공식 논평을 한 줄도 내놓지 않았다.
숀 매코맥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룸에 들어섰지만 “별달리 할 말이 없다”며 질문을 받기 시작했다. 기자들도 북한 핵 등 다른 이슈에 밀려 질문이 없었다.
정식 회견이 끝난 뒤 마이크를 끈 뒤에서야 대변인은 “납치 한국인들은 누구에게도 위협이 되지 않는 무고한 시민들로, 즉각 석방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문제에 긴밀히 대처하고 있는 한국 정부를 지지한다”고도 했다.
동맹국이자 이라크 및 아프간 파병 병력 수 3위국인 한국의 민간인이 대거 납치된 것에 대해 왜 미국이 공식 논평을 자제하는 걸까.
워싱턴의 한 외교소식통은 24일 “미국 정부가 의도적인 거리두기를 통해 한국 정부의 협상을 돕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납치범과의 협상을 통해 인질 구출에 전력투구하는 상황을 돕기 위해서라도 한미 간 연결고리를 애써 강조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라는 것.
미국 정부는 ‘테러범과는 협상 없다’는 큰 원칙을 고수해 왔다. “테러를 자행하면 생기는 게 있다”는 믿음을 차단하려는 고육책이다.
한국인들이 납치된 카라바그 지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산하의 미군이 치안을 유지해 온 곳이다. 탈레반으로선 ‘미군의 존재감’을 강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다른 소식통은 “탈레반은 워싱턴의 기류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며 “워싱턴이 동맹국 한국을 강조할수록 극단적 반미의식으로 무장된 탈레반을 자극할 수 있다는 분석이 미 행정부에서 공감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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