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에 대해 25일 이후 ‘풀려났다→석방되지 않았다→미군기지로 이동했다→되돌아갔다’는 엇갈린 외신 보도가 잇따라 나왔다.
한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확인해 주지는 않았지만 정부 관계자의 설명과 외신 보도를 종합해 보면 석방 과정 막판에 일이 틀어졌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인질 8명 석방설의 진실=한국인 피랍자 23명 가운데 8명이라는 숫자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24일 저녁이었다.
‘탈레반 죄수 석방 불가’ 태도를 보이던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탈레반으로부터 석방을 원하는 죄수 명단이 넘어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히면서 ‘교환 석방’에 의한 사태 해결의 가능성이 열리기 시작했다.
약 하루 만인 25일 오후 9시경 연합뉴스는 한국 정부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8명이 석방돼 안전한 곳으로 이동 중이라고 전했다. 가족들과 국민은 안도감과 함께 향후 협상전개에 대한 기대감에 한껏 부풀었다.
그러나 불과 20분 만에 탈레반이 한국인 인질 1명을 살해했다는 소식이 알자지라 방송과 외신을 통해 일제히 쏟아지면서 혼란이 시작됐다.
아프간 정부 협상단 수석대표인 와히둘라 무자다디가 “1명은 살해됐지만 8명이 풀려났다는 보도는 확인할 수 없다”고 말하자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심지어 협상단 대표인 그 자신도 탈레반의 총격을 받아 납치 또는 살해될 뻔했다고 밝혀 뭔가 일이 잘못됐다는 우려가 커졌다. 탈레반은 오후 11시 29분 “아무도 석방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26일 오전 1시 44분. 이번엔 AP 통신이 서방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여성 6명과 남성 2명이 풀려나 미군기지로 이동 중이라고 보도했지만 결과적으론 오보였다.
26일 새벽녘 일본 NHK방송 보도에 따르면 탈레반은 25일 인질 8명을 넘겨주기 위해 약속장소로 향했다가 주변에 아프간 정부의 전차와 미군 지프 등을 발견한 뒤 자신들의 안전이 위협받는다고 판단해 은거지로 되돌아갔다.
한 정부소식통은 “1명이 살해된 것은 그 과정에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더는 언급을 피했지만 배형규 목사가 살해당한 시점도 바로 탈레반이 인질 8명을 데리고 되돌아갈 때인 것으로 보인다. 배 목사가 8명 가운데 포함됐었는지 분명치 않다.
▽8명 운명이 뒤바뀐 이유는?=이 같은 정황을 종합해 볼 때 인질 8명이 억류된 곳을 떠나 ‘인도 장소’로 이동했던 것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그 후 인질 8명 석방을 둘러싼 협상이 갑자기 후퇴한 이유는 분명치 않다.
다만 몇 가지 추론은 가능하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NHK의 보도처럼 탈레반 인솔자가 인질 8명을 인도하려다 위협을 느껴 돌연 이를 중단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정부 당국자는 “NHK 보도가 상황을 거의 근접하게 묘사한 것 같다”고 말해 이를 뒷받침했다.
또 협상 과정에서 인질과 탈레반 죄수의 맞교환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지만 탈레반 측이 막판에 그들의 동료가 실제로 풀려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와 함께 인질 석방의 대가로 받기로 한 돈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물론 탈레반이 동료 죄수의 맞교환 없이는 애초부터 인질을 풀어 줄 의사가 없었으면서도 석방설을 흘리는 고도의 심리전을 펼쳤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어쨌든 ‘8명 석방’이 최종 순간에 틀어짐에 따라 잠시나마 자유의 문턱에 섰던 이들 8명은 나머지 동료 14명과 운명을 같이하게 됐다. 가족들은 배형규 목사 살해 소식 때문에 피 말리는 긴장의 밤을 보낸 뒤 26일 들려온 ‘한국인 22명 무사’ 소식에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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