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영화보다 극적" 中 자장커 감독 방한회견

  • 입력 2007년 7월 29일 16시 16분


중국 정부의 영화 검열에 반발하고 자유로운 작품 세계를 추구해 온 '지하전영(地下電映)'의 대표적 인물인 자장커(賈樟柯) 감독은 28일 서울 종로 필름포럼에서 기자회견을 연 뒤 관객과 대화도 나눴다.

자장커 감독은 빠른 속도로 바뀌는 중국 사회를 배경으로 그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 중국 이외 지역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호흡은 느리되 시각은 날카로운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작년 베니스영화제에서는 '스틸 라이프(Still Life)'로 최고 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하지만 '소무'(1998년), '플랫폼'(2000년), '임소요'(2002년) 등 중국 사회의 어두운 면을 파헤친 그의 작품들은 모두 중국 내 상영이 금지됐고 2005년에야 비로소 '세계'가 개봉될 수 있었다.

그는 회견에서 "우리 생활 자체가 너무 빨라지고 있다. 생활의 과정을 보여줄 새 없이 빨리 지나간다. 원래 그대로의 시간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느린 템포'에 대해 설명했다.

또 '스틸라이프'의 배경에 대해 "현실이 잔혹하고 고통스럽더라도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모습을 비관적이지 않게, 희망적으로 그리려 했다"고 말했다.

그의 대표작을 상영하는 '자장커 스페셜' 행사는 필름포럼에서 26일 시작해 내달 2일까지 열린다.

다음은 일문일답.

-비자 발급이 늦어져 간신히 한국에 들어왔다. 소감은.

▲예정대로라면 어제 왔어야 하는데 늦어서 죄송하다. 비행기로 1시간 걸리는 가까운 거리인데도 외국이라 더 먼 것 같다. 그래도 영화를 통해 두 나라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좋다.

-작품에서 관객에게 가장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중국은 발전 속도가 매우 빠르다. 그런 사회적 배경 속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알려주고 싶다. 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인간이 스스로 사랑과 삶을 선택하면서 얻는 행복과 중요성이다.

-주로 중국이 변화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싼샤(三峽)댐 건설을 소재로 한 '스틸라이프'에서는 (중국의) 대표적 공간을 통해 중국의 변화를 보여주고 싶었다. 싼샤댐 건설로 100만 명이 고향을 떠야 했고 7¤8개의 마을이 없어졌다.

-외국에서 인정을 받은 후 중국 정부도 변화를 보였나.

▲유일한 변화라면 중국에서도 영화를 상영하게 됐다는 것이다. 영화 '세계' 전까지는 상영이 금지됐다.

-3월에 중국 당국의 고위 관계자가 자장커 감독 등 여러 젊은 감독의 실명을 거론하며 감독들이 사회 비판적 시각만 강조해 관객으로부터 외면을 받는다고 비난했는데.

▲올해 중국에서도 많은 논란을 일으킨 발언이다. 하지만 당국자가 어떻게 말하든 상관 없이 젊은 감독들은 찍고 싶은 영화를 찍을 뿐이다. 그의 발언은 우리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또 내 영화를 좋아하는 젊은 관객도 많다. DVD를 소장하거나 인터넷에서 토론을 벌이는 이들은 대부분 젊은이다. 또 '스틸라이프'를 보고 싼샤를 여행하는 젊은이도 늘고 있다.

-영화에서 죽음이 등장한다.

▲'동(東)'과 '스틸라이프'를 찍을 때 노동자 한 명이 실제로 철거 현장에서 숨졌다.

인간은 여전히 연약하고 세상은 여전히 위험하다. 중국인의 희생에 대해 얘기하려 했다. 현실이란 얼마나 잔혹하고 고통스러운가. 인간의 변화는 가만히 앉아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 현실은 영화보다 훨씬 극적이고 거짓 같다. 영화에서는 인물들의 뒷모습을 보여주면서 현실이 그러하더라도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모습을 비관적이지 않게, 희망적으로 그리려 했다.

-코스모폴리탄 감독이 늘고 있다. 당신은 중국인인 (세계의) 영화감독인가, 중국의 영화감독인가.

▲어려운 질문이다. 감독이란 예술을 만드는 창조자다. 세상에는 각자 정체성을 가진 '개인'과 하나로 묶인 '단체'가 있는데 개인과 단체를 연결하는 예술이 바로 영화다.

-디지털 기술 발전으로 영화에서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경계가 좁혀지는 것 같다. 당신의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는 어떻게 다른가.

▲화가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동'으로 찍다가 극영화로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 철거되기 전에 얼른 찍어야 해서 곧바로 시작한 것이 '스틸라이프'다. 디지털은 이 시대에 적합한 발명품의 하나다.

'스틸라이프'의 첫 장면은 클로즈업인데 디지털로 찍으면 인물에 아주 가깝게 다가가도 거부감이 덜하다. 또 '스틸라이프'에는 초현실적인 장면이 많다.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지만 디지털로 후반작업 때 초현실적인 장면을 넣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다큐멘터리로 '사실'을 찍다 극영화를 찍으니 모두 '거짓' 같아 익숙하지 않았다.

--왜 '느린 영화'를 찍나.

▲우리 생활 자체가 너무 빨라지고 있다. 생활의 과정을 보여줄 새 없이 빨리 지나간다. 원래 그대로의 시간을 보여주고 싶었다.

-'스틸라이프'에서 건물이 UFO가 돼 날아가는 장면은 어떤 뜻인가.

▲UFO란 행복과 비슷한 맥락이다. 행복은 늘 추구하지만 (항상 보이지는 않는)UFO 같은 존재다. 그 건물은 돈이 모자라 짓다 만 기념탑이다. 지구에 존재하지 않는건물, 외계인이 지어 언젠가는 날아갈 버릴 것 같은 건물이라 초현실적인 모습을 봤다.

-'스틸라이프'에 '영웅본색' 장면이 들어가는 등 홍콩영화의 영향이 있는 것 같다.

▲소년 시절 어두운 방에서 싼 값에 종일 비디오를 보여주는 곳이 있었다. 그곳에서 6년 동안 여느 홍콩 사람보다도 많은 홍콩영화를 봤다. 나는 컴컴한 곳에서 '사랑(멜로)'과 '싸움(액션)'이 뒤섞인 어린 시절을 보낸 셈이다.(웃음) '스틸라이프' 찍기 전 '플랫폼'을 함께 했던 배우를 만났는데 저우룬파(周潤發)를 아직도 좋아한다는 대화를 했다. 그래서 '스틸라이프'에 '영웅본색' 장면을 넣었다.

-회화를 전공했는데 영화 찍을 때 도움이 되는가.

▲그림을 그릴때도 그랬지만 가장 먼저 내가 하는 것은 사람과 환경에 대한 관찰이다. 어느 정도 영향이 있는 것 같다.

-최근 중국 영화나 드라마는 사극 일색이다.

▲중국에서는 상영 전에 심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현재와 동떨어진 사극을 선택하게 된다. 또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와호장룡'의 영향으로 무협영화가 인기가 많다. 중국에 현실적인 영화가 거의 없어 오히려 나는 그런 영화에 집착하고있다. 사극은 찍지 않을 것이다.

-차기작은 어떤 영화인가.

▲예술가에 대한 영화를 3편 찍으려 한다. 다음 영화는 '무용(Useless)'이란 다큐멘터리로 여자 디자이너에 대한 영화다. 앞서 '동'으로 화가에 대한 영화를 찍었다. 또 하나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올 5월 칸영화제에서 한국 언론과 인터뷰할 때 배우 안성기와 작업하고 싶다고 했다. 진행이 됐나.

▲여전히 안성기와 함께 영화를 찍고 싶은 마음이 있다. 준비 단계일 뿐 진행된것은 없다.

디지털뉴스팀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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